[노파에세이] 길조(吉鳥), 소설가

by N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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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층간소음을 피해 아침부터 스타벅스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배가 빨간 새 한 마리가 가로수 위로 날아들었 다. 나무를 똑똑똑 쪼는 것을 보니 딱따구린가 보다.


배도 빨갛고 머리도 빨갛고 등에는 흰색 줄무늬도 있고. 뭐 저리 예쁜 새가 다 있나, 싶어서 찾아보니 “붉은배 오색 딱따구리”와 똑닮다. 그런데 기사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https://www.khan.co.kr/article/200604201819381


“지구상에서 몇 마리 남지 않은 새”, “1961년 경기도 광릉에서 잡혀 박제로 보관돼 있으나 살아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보도되기는 처음”, “이 새가 서울 도심에서 발견된 것은 아주 희귀한 일”


그래서 나는 정초부터 붉은배 오색 딱따구리를 봤다고 믿기로 했다. 고로 나는 2026년 1월 1일에 지구상에서 몇 마리 남지 않은 새를 본 사람이 되었다. 그대들도 보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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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아침 9시가 좀 넘은 스타벅스에는 기존에 오는 외로운 인간에 더해 외롭지 않은 4인 가족들까지 있었고, 오후가 되자 근처 교회에서 방출된 교인들까지 몰려들어 외롭게 홀로 온 인간들은 속절 없이 의자를 하나씩 빼앗겼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까.


앞에 앉은 여인이 테이블까지 빼앗겼을 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여인도 해탈한 웃음을 지었다. 여인이 욕심이 많아서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하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의자고 테이블이고 죄 뺏겼다.


스타벅스는 현대시대 사설 복지 기관 같다. 커피 한 잔 값만 내고 앉아 있으면, 외로운 사람, 안 외로운 사람, 모두 모여들어 복닥거리다가 떠난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KakaoTalk_20260104_105845565_06.jpg?type=w1 잘 보면 모두 의자 하나씩 없다.


오늘은 8시부터 더 큰 스타벅스로 원정을 나와 있다. 맨발 벗고 앉아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강박적으로 빗고 있는 여자까지, 진짜 별별 인간 다 있는데, 오묘하게 조화롭다. 누구도 너무 심하게 굴진 않는다.


심한 건 위층에서 뛰는 아이들이 심하다. 늦도록 뛰는 아이들을 단속 안 하는 부모가 심하다. 요즘은 아이들이 넘어져서 코가 깨지지 않게 해달라고, 발을 헛디뎌 다리 몽뎅이가 부러지지 않게 해달라고, 저 집 부모가 얼른 돈 벌어서 큰 집으로 이사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묘하게 분이 풀리는 기도다.


다들 코도 깨지지 말고, 다리도 부러지지 말고, 돈은 넉넉하게 버는 한 해 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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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번 달 칼럼.

“그런 점에서 쓰는 사람은 단순한 백수가 아니라 최대치의 인간으로 사는 인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쓰는 인류여, 새해에는 나가서 새를 봅시다.”

https://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87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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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는 지난한 퇴고 끝에 또 응모했고, 예상대로 올해도 또 떨어졌다. 올해도 또 같은 심사위원이었다. 벌써 십 년이 넘도록 같은 심사위원들이다.


응모작 수가 늘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작품이 많아진 건 아니라는 푸념이 무색하게 심사평 또한 특별하지 않았다. 표현과 문장이 찍어낸 듯 전형적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응모하는 사람들의 글을 심사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들의 심사평에서 전체 응모자들의 표현과 문장을 뛰어넘는 뭔가를 기대한다는 모르는 걸까?


그래서 이분들을 다시 소설가라는 본업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의견을 보냈다. 한국 문학을 이끄는 귀한 작가들이 심사하느라 제대로 된 글 한 줄 못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써야 소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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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4129802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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