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마음

[노파 문학관 : 해남] 19일차. 개물림 사고

by NOPA


20260319

#1.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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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관에는 늠름한 개 세 마리가 있다. 흰 것은 풍산개고, 검은 것과 누런 것은 진돗개다. 처음 본 사람에겐 사납기가 말도 못한다.


그래서 매일 산책을 오갈 때마다 철창 앞으로 가서 얼굴을 비췄다. 말도 걸고, 손 냄새도 맡게 해줬다. 검은 개가 제일 먼저 마음을 열었고, 흰 놈은 가끔 만지는 걸 허락했고, 누런 것은 마지막까지 경계했다.


경계는 해도 꼬리가 마구 흔들리는 것은 저도 어쩌질 못했다. 누런 것이 셋 중 최고참인데, 최근 흰 것이 반항을 한 일이 있어서 왕좌를 지키기 위해 각별히 더 날을 세우는 중이었다. 그래서 꼬리는 반가운데 입은 짖었다. 마음은 반가운 데, 머리는 사납게 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유독 살갑게 굴었다. 방금 전에 검은 것이 내게 실컷 쓰다듬을 받는 것을 보자 자신도 쓰다듬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 손 냄새를 이리저리 맡더니 처음으로 내게 머리를 숙이며 쓰다듬어달라고 했다.


드디어 네가 나를 인정해주는구나!


19일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다는 생각에 북받치는 감동을 억누르며 조심스레 누런 것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앙!


손에 구멍이 뚫렸고, 개는 내 손을 이빨에 꿴 채 두어번 머리를 흔들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나는 나대로, 개들은 개들대로 놀랏다.


놀라기는 누런 것도 마찬가지였다. 물 때는 찢어발길 것처럼 사납게 짖으며 흔들더니 그 기세가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나는 다친 손을 붙잡고 “왜 그랬어?”라고 물었고 개는 뒤로 물러나더니 짖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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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모님

물린 상태가 좋지 않아 촌장님 사모님께 소독 좀 해달라고 했고, 소독으로 될 게 아닌 것 같은지 사모님은 나를 데리고 보건소로, 읍내 의원으로 차를 몰았다.


의원에서 오늘은 소독으로 세균만 죽이고, 꿰매는 건 내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하자 “그러네요, 걔네들 양치도 안 하니까 더러울 거 아녜요”라고 하셔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워낙 차분한 성품의 어른인지라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모습이 역시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운전을 무섭게 하셨다. 그리고 평소답지 않게 끝없이 말을 쏟아내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사모님의 당황한 모습이었다.


어렵게 문학관을 운영하시는 걸 알아서 내 잘못이라고, 함부로 개를 만진 내가 바보라고, 괜히 사고 쳐서 죄송하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마음이 편하실 리 없었다.


어디서 사오셨는지 따뜻한 김밥과 떡과 꿀 등을 싸들고 방문을 두드리셨다. 당분간 밥하기 불편할 테니 이걸로 끼니를 해결하라고, 꿀이 염증에 좋으니까 듬뿍 찍어먹으라고 하셨다. 눈물이 핑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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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의 마음

가만히 침대 위에 앉아 개의 마음을 생각했다. 개는 분명히 나를 좋아했다. 진돗개한테 물렸는데도 상처가 이 정도에서 그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종은 원래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문다. 두 번만 흔들고 손을 놔줬다는 것은 개의 입장에서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왜 그랬을까?


쓰다듬을 받고 싶어 머리를 내밀었다가 막상 쓰다듬을 받는 순간 자신의 위계가 흔들린다고 느낀 걸까? 안 그래도 흰 개가 자기 자리를 위협해서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닌데, 쓰다듬을 받는 순간 녀석에게 약한 놈으로 보였다고 생각한 걸까?


뭐가 됐든, 개가 나를 물고 나는 개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그곳에 있던 모두가 느낀 것은 당혹감이었다. 너무 당혹스러워서 어떤 개도 짓지 않았고, 어떤 인간도 울지 않았다. 그게 누런 개를 더욱 당황하게 했던 것같다. 뒤로 물러나서 꼬리를 만 채 짓지도 못하고 있던 걸 보면 말이다. 개라는 동물이 원래 저렇게 내면이 복잡한 존재였나? 그냥 다 내 상상인 건가?


#4. 인간의 몸

개의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몸이 터무니없이 연약하다는 건 오늘 일로 확실하게 알게 됐다. 대형견도 아니고, 중형견의 한 번의 입질에 살이 뚫리고 피가 뚝뚝 떨어지다니, 개가 작정하고 달려들었다면 내 몸은 쑹덩쑹덩 뜯겨나갔을 것이다.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지고도 인간에게 납작 엎드려 사랑을 구걸하는 개는 참 희한한 짐승이다. 나중에 귀촌하면 이 희한한 진돗개를 반려견으로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만 사랑해 줘, 나머지는 다 물어뜯어버리고.


그러나 누렁이는 이제 안녕.

넌 나의 신뢰를 배신했다. 난 이제 너의 우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 도란도란 말을 걸어주지 않을 것이다. 내 손의 냄새도 맡게 하지 않을 것이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것이다. 너 때문에 검둥이도 내 쓰다듬을 받지 못할 것이니 평생 검둥이에게 속죄하며 살거라, 나쁜 놈아.


ps. 귀신

오늘 새벽에 방에서 귀신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꿈이었다. 방에 있는 찻상이 대추나무로 만들어진 거라 귀신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아닌데, 염병할 놈이 여길 기어져왔다며 성질을 부리곤 다시 잤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귀신이 오늘 있을 불행을 예고해주려고 왔던 것 같다. 대추나무의 화기를 무릅쓰고.

미안해, 몰랐어.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오늘 일도 마냥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개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고, 살이 뚫릴 땐 어떤 느낌이 드는지도 알게 됐고, 얼굴이 뚫린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저 정도 크기의 개와 싸워도 지는데, 멧돼지나 곰과 마주치면 죽는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참고로 짐승에게 물어뜯기는 순간에는 놀라서 통증이 느겨지지 않는다. 통증은 사건 현장에서 벗어난 후, 이제 안전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찾아온다. 이 정도만 다쳐도 많이 아프다. 그러니 야생에서 곰을 만난나면 부디 한 입에 먹어치워주길 바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타자를 치고 있는 것을 보면 힘줄이 상하진 않은 것 같다. 고맙다 개놈시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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