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쑥과 시골 의사

[노파 문학관 : 해남] 24일차. 개물림 후유증과 시골살

by NOPA


20260324

#1. 개 물림 후유증

개한테 물리고 한동안 아팠다. 엄지 손가락에 구멍이 뚫리니 칫솔질이 안 돼서 양치도 왼손으로 해야 했고, 젓가락질도 한동안 할 수 없었고, 핸드폰 문자도 못 보냈다. 키보드는 그럭저럭 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KakaoTalk_20260324_202123293.jpg?type=w1 의사가 잘 싸매 놓으면 집에 와서 꼭 뜯어서 확인한다. 그냥 그런 성격이다.


우연히 본 드라마 클립에서 심은경이 작은 칼로 남자의 몸 이곳저곳을 빠르게 찔러댄 후 최후의 일격을 가하던데, 그 장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아무리 운동으로 단련된 거구의 남자라도 몸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리면 맥을 추지 못한다. 뚫린 곳과 연결된 모든 부위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손이 다쳤다고 손만 아픈 게 아니고, 달고 오는 병들이 있다. 이 2차 병환이 개물림으로 인한 직접적인 통증보다 더 가혹했는데, 갑자기 고용량의 항생제를 들이 부으니 몸이 견디지 못해 두통에, 설사에, 오한까지 왔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극심한 오한이었는데, 한 시간 가까이 방바닥에서 경련하다가 뼈가 모두 부서지는 줄 알았다.


하도 턱을 덜덜덜 떨어서 이러다 이가 다 나갈까 봐 혓바닥을 내밀어 치아를 사수하려 했지만, 혓바닥이 잘릴 것 같아 바로 그만 뒀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아마 기절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KakaoTalk_20260324_202123293_11.jpg?type=w1
KakaoTalk_20260324_202123293_25.jpg?type=w1
의원 진료실 풍경. 그리고 집에서 소독하라며 비닐 장갑에 챙겨주신 거즈와 붕대. 개인적으론 이런 정서를 좋아한다.


#2. 도시와 전혀 다른 시골 의원

다음 날 의원에 가서 간밤의 상황을 이야기 하며 처방을 해달라고 했다. 시골 의사는 3초쯤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포타겔을 처방해 줬다.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설사약이다. 역시 명의다.


시골 명의의 처방 덕분에 개 물림 4일 차부터 복근 운동을 할 수 있었고, 5일 차엔 산책을, 6일 차인 오늘은 스쿼트 2백 개를 재개할 수 있었다. 심지어 커피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명의였다. 인생의 어떤 문제도 3초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주셨다.

(그리고 정말 친절하시다. 특히 간호사 선생님들!)



#3. 개와의 신경전

KakaoTalk_20260324_202123293_02.jpg?type=w1
KakaoTalk_20260324_202123293_05.jpg?type=w1
유채잎을 따고 해변에 그네를 탔다. 천국에서 산다


시골 출신 작가님이 지금이 딱 유채가 먹기 좋은 시기라고 하셔서 유채 잎을 따러 갔다. 가는 길에 개가 짓길래 “야 이 새끼야, 사람 손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네가 짖으면 안 되지, 이 배신자 새끼야” 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녀석은 나를 문 이후로 마치 처음 본다는 듯 다시 짓기 시작했는데, 내가 다가가서 욕을 퍼부으면 짖기를 멈추고 딴청을 피운다. 그렇게 일주일째 개와 기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나도 개만큼이나 앙심이 깊은 인간이어서 나를 문 개는 눈에 띌 때마다 부지런히 욕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귀촌하면 진돗개를 키울 것이다. 나밖에 모르는 짐승! 월!


KakaoTalk_20260324_202123293_08.jpg?type=w1
KakaoTalk_20260324_202123293_03.jpg?type=w1


유채잎을 가방 가득 땄다. 쑥도 지천이길래 반 봉지나 땄다. 이 정도 양이면 마트에서 3, 4천 원에 파는데, 역시 뭐든 사 먹는 게 낫다. 저만큼 따려면 한 시간을 쪼그려 앉아 바닥을 훑어야 하기 때문이다.


채집한 잎들을 물에 담가 깨끗이 씻은 후 유채 잎으로는 된장국을 끓였고, 쑥잎으로는 떡을 지으려고 했다. 유채잎 된장찌개는 성공했고, 쑥떡은 그냥 향긋한 밥이 됐다.


KakaoTalk_20260324_202123293_21.jpg?type=w1
KakaoTalk_20260324_202123293_22.jpg?type=w1
KakaoTalk_20260324_202123293_24.jpg?type=w1
KakaoTalk_20260324_202123293_09.jpg?type=w1


밥을 다시 집요하게 치댄 후 만능찜으로 돌리기를 두어번 했더니 이젠 그냥 찰지고 향긋한 밥이 됐다.


KakaoTalk_20260324_205430123_01.jpg?type=w1
KakaoTalk_20260324_205430123_02.jpg?type=w1
국자와 주걱으로 치대는 것도 팔이 아파 죽겠던데, 믹서도 밥솥도 없던 시절 저걸 종일 절구에 쳐댄 조상들의 집념을 생각하면 좀 징그럽다.


어제 시골 출신 작가님 방에 가봤더니 바로 앞 바다에서 고둥도 한 주먹 따오셨던데, 그건 따라 할 수 없다. 손에 구멍이 났기 때문이다.


벌써 일주일째 양치도, 세수도, 샤워도 고무장갑을 끼고 하는 중이다. 그런데 네가 나한테 짖어? 동물을 사랑하지만 나를 문 저 녀석만큼은 개패듯이 패고 싶다.


인간이었으면 바로 감방으로 보냈을 텐데, 개라서 물기 전부터 우리에 갇혀 있다. 갇혀서 맨날 갈색 돌멩이 같은 사료만 먹는다. 패고 싶은데 불쌍하다. 아, 개야!

요즘 맨날 그네 탄다. 개한테 물렸는 데도 내 팔자 최고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4222634005

#노파의글쓰기 #어느날글쓰기가쉬워졌다 #글쓰기 #글잘쓰는법 #노파 #김수지작가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감성글 #해남여행 #문학관 #입주작가 #땅끝마을 #개물림사고 #개물림 #시골의원 #오한 #유채잎 #유채된장찌개 #천연쑥 #쑥떡 #쑥밥 #시골살이 #내팔자상팔자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7화개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