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 문학관 : 해남] 24일차. 개물림 후유증과 시골살
20260324
#1. 개 물림 후유증
개한테 물리고 한동안 아팠다. 엄지 손가락에 구멍이 뚫리니 칫솔질이 안 돼서 양치도 왼손으로 해야 했고, 젓가락질도 한동안 할 수 없었고, 핸드폰 문자도 못 보냈다. 키보드는 그럭저럭 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우연히 본 드라마 클립에서 심은경이 작은 칼로 남자의 몸 이곳저곳을 빠르게 찔러댄 후 최후의 일격을 가하던데, 그 장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아무리 운동으로 단련된 거구의 남자라도 몸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리면 맥을 추지 못한다. 뚫린 곳과 연결된 모든 부위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손이 다쳤다고 손만 아픈 게 아니고, 달고 오는 병들이 있다. 이 2차 병환이 개물림으로 인한 직접적인 통증보다 더 가혹했는데, 갑자기 고용량의 항생제를 들이 부으니 몸이 견디지 못해 두통에, 설사에, 오한까지 왔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극심한 오한이었는데, 한 시간 가까이 방바닥에서 경련하다가 뼈가 모두 부서지는 줄 알았다.
하도 턱을 덜덜덜 떨어서 이러다 이가 다 나갈까 봐 혓바닥을 내밀어 치아를 사수하려 했지만, 혓바닥이 잘릴 것 같아 바로 그만 뒀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아마 기절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2. 도시와 전혀 다른 시골 의원
다음 날 의원에 가서 간밤의 상황을 이야기 하며 처방을 해달라고 했다. 시골 의사는 3초쯤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포타겔을 처방해 줬다.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설사약이다. 역시 명의다.
시골 명의의 처방 덕분에 개 물림 4일 차부터 복근 운동을 할 수 있었고, 5일 차엔 산책을, 6일 차인 오늘은 스쿼트 2백 개를 재개할 수 있었다. 심지어 커피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명의였다. 인생의 어떤 문제도 3초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주셨다.
(그리고 정말 친절하시다. 특히 간호사 선생님들!)
#3. 개와의 신경전
시골 출신 작가님이 지금이 딱 유채가 먹기 좋은 시기라고 하셔서 유채 잎을 따러 갔다. 가는 길에 개가 짓길래 “야 이 새끼야, 사람 손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네가 짖으면 안 되지, 이 배신자 새끼야” 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녀석은 나를 문 이후로 마치 처음 본다는 듯 다시 짓기 시작했는데, 내가 다가가서 욕을 퍼부으면 짖기를 멈추고 딴청을 피운다. 그렇게 일주일째 개와 기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나도 개만큼이나 앙심이 깊은 인간이어서 나를 문 개는 눈에 띌 때마다 부지런히 욕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귀촌하면 진돗개를 키울 것이다. 나밖에 모르는 짐승! 월!
유채잎을 가방 가득 땄다. 쑥도 지천이길래 반 봉지나 땄다. 이 정도 양이면 마트에서 3, 4천 원에 파는데, 역시 뭐든 사 먹는 게 낫다. 저만큼 따려면 한 시간을 쪼그려 앉아 바닥을 훑어야 하기 때문이다.
채집한 잎들을 물에 담가 깨끗이 씻은 후 유채 잎으로는 된장국을 끓였고, 쑥잎으로는 떡을 지으려고 했다. 유채잎 된장찌개는 성공했고, 쑥떡은 그냥 향긋한 밥이 됐다.
밥을 다시 집요하게 치댄 후 만능찜으로 돌리기를 두어번 했더니 이젠 그냥 찰지고 향긋한 밥이 됐다.
어제 시골 출신 작가님 방에 가봤더니 바로 앞 바다에서 고둥도 한 주먹 따오셨던데, 그건 따라 할 수 없다. 손에 구멍이 났기 때문이다.
벌써 일주일째 양치도, 세수도, 샤워도 고무장갑을 끼고 하는 중이다. 그런데 네가 나한테 짖어? 동물을 사랑하지만 나를 문 저 녀석만큼은 개패듯이 패고 싶다.
인간이었으면 바로 감방으로 보냈을 텐데, 개라서 물기 전부터 우리에 갇혀 있다. 갇혀서 맨날 갈색 돌멩이 같은 사료만 먹는다. 패고 싶은데 불쌍하다. 아, 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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