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 문학관 : 해남] 32일차
20260401
#1. 남도의 미식
해남은 음식은 좀 약한 편입니다. 그래도 남도인지라 어디든 들어가도 기본 이상은 하는데, 회를 먹고 싶으면 차라리 근처 완도로 가고, 도시의 풍미가 그리우면 좀 더 멀리 목포로 가게 됩니다.
해남에서 유명한 음식은 우수영에서 뜰채 숭어 요리나 대흥사 근처의 닭코스 요리인데, 닭의 모든 것이 나오는 코스이긴 하지만 3인분에 8만 원 정도면 굳이 닭의 모든 것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됩니다.
제가 있는 문학관 근처에는 장어탕집이 잘하긴 하지만 매일 장어탕을 먹을 순 없는 노릇이고, 근처 백반집이나 국밥집은 별로 걸음하지 않게 되어서 그냥 풀을 뜯어 먹습니다.
유채 잎을 뜯어 된장국을 끓여먹고 쑥을 캐서 쑥밥을 해먹습니다. 오늘은 뻘에 나가서 고둥을 한 바구니 캐왔습니다. 미역국에 넣어먹을 생각입니다. 지천에 뜯어먹을 것 천지입니다.이래서 식당이 발달하지 않는가 봅니다.
#2. 식도락의 성지, 목포와 완도
식도락을 하시려면 목포로 가는 게 좋습니다. 독천식당에서 놀랍도록 야들야들한 낙지무침을 드시고, 남도의 성심당이나 다름 없는 콜롬보제과점에서 기가막히게 부드러운 롤케익을 드시기 바랍니다. 어영구영 거리를 걷다보면 요즘 유행이라는 밥솥 쫀드기도 한 봉지씩 쥐어주는데 왜 공짜로 주는지 알 수 있는 맛이긴 합니다.
회를 드시려면 완도 회센터로 가는 게 좋습니다. 상가 안에서 가장 호객 행위를 잘하는 집으로 끌려가 생선을 고른 후 바깥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있으면 아주머니가 오셔서 1차로 상차림 비용 6천 원을 받아 가시고, 그 후사장님이 2차로 횟값을 받아가는데, 일반 횟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쌉니다.
싱싱한 회를 한 점씩 입에 넣으며 멀리 포구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저개발 해상 국가에 온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고 좋습니다.
#3. 엄홍길 대장과 함께 달마고도 돌기
식도락은 약하지만 해남은 산이 강합니다.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부터 달마산, 흑석산 등 산세가 아주 근사하고 멋집니다.
지난주에는 엄홍길 대장이 와서 함께 달마산 둘레길인 달마고도를 도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실밥도 풀어야 하고, 늦지 않게 친구를 기차역까지 바래다줘야하는 일정이었지만 엄홍길은 대체 뭐가 다른지 너무 보고 싶었기에 드미뜨리를 왕, 밟아가며 겨우 출발 시간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신청한 팀엔 엄홍길 대신 자기 장딴지나 자랑하는 남자가 남자가 가이드를 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적당할 때 빠져나와 혼자 반대방향으로 도는데, 멀리서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이끄는 팀이 제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오매불망하던 엄홍길 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끝만 보고 있었고, 그와 함께 걷는 사람 중 누구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행할 땐 마주 오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게 예읜데, 제가 먼저 인사를 건네도 그 팀의 누구도 제게 화답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우리팀의 장딴지 강사가 그리워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엄홍길 대장이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게 됐는데 카메라 앞에서는 생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이래서 덮어놓고 유명인을 쫓아다니지 말라고 하는가 봅니다.
#4. 음란마귀가 끼긴 했지만..
실밥을 푼 손에는 제 2의 입이 생겼고, 해변에는 새끼 복어가 죽어 있었으며, 알라깔라 또깔라비 또깔라비, 주여! 하던 여자들이 떠난 자리에는 토마토 세 개가 주술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제 밤늦게 옆방에 숙박하러 온 커플이(옆방은 일반인 숙박 가능) 밤새 교성을 질러대며 성교를 하는 통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 세 시에 깨어 이 망할 음란 마귀들을 몰아내려고 스님의 법문을 크게 틀어 놓았으나 스님이 졌고, 오히려 법문 사이사이로 교성이 비트박스처럼 흘러나와 더욱 번뇌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중년의 마귀들은 기력도 어찌나 좋은지 밤새 달리고도 새벽 같이 문학관을 떠나버려서 저는 그들의 뒷모습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마귀였나봅니다.
그런 일들 외에 저의 문학관 생활은 아주 평화롭게 흘러가는 중입니다. 새로 온 작가님들은 전부 퇴임한 교수 출신이라 매우 점잖으시고, 저 역시 아주 점잖은 사람입니다. 4월에는 사건 사고 없이 점잖게 글을 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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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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