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 문학관 : 해남] 44일차
20260403
#1. 빨간 것과 빨갱이
좋은 분이셨다. 아픈 친구를 위해 네 시간을 차를 달려 오셨으니까. 그분이 나보고 어디서 사냐고 물었다. 일산이라고 했더니 거기는 빨간색이냐, 아니면 파란색이냐고 물으셨다. 시절마다 다르다고 했다. 아직은 빨간색인데, 6월엔 파란색으로 바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나는 무슨 색이냐고 물으셨다. 경상북도에서 온 60대 기독교 여성의 질문이니 의도가 훤했다. 앞으로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는 뜻에서 일부러 과하게 말했다. “저는 완전 빨갱이입니다.”
물론 진짜 빨갱이가 들으면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질 일이다. 나는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공산주의는 미친 짓이고, 자본주의는 트럼프가 다 보여주고 있고, 그저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단 낫다고 믿는 사람이니까. 기본적으로 극우고 극좌고 모든 극단적인 것들을 혐오하지만, 그중에서도 극우는,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기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주의라고 믿는다. 거기에 내 극단이 있다.
그분은 자기가 사는 지역은 전부 우파여서 자기도 우파라고 했다. 그럴 거 같아요, 그냥 경상도도 아니고 경상북도니까요. 그러자 그분은 살짝 흥분해서 말했다. 정치색은 여기(전라도)가 더 심하잖아요! 내가 여기 사람은 아니지만, 경상도 사람이 그 이유를 모르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답했다. 여긴 사람이 죽었잖아요, 경상도 출신 대통령 때문에. 약자들은 뭉칠 수밖에 없어요.
정말 좋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위해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으니. 그런 사람이 어떻게 영현 백을 3만 개를 주문한 사람을 지지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건, 정치색을 떠나서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배운 사람의 오만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분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흔들렸다.
사람에겐 여러 측면이 있고, 이분의 한 측면은 친구를 위해 기꺼이 네 시간을 차를 몰아 달려올 수 있지만, 다른 한 측면은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라는 기본 윤리를 지식인의 오만이라고 여긴다. 인간이란 뭘까. 선하다는 건 또 뭘까.
그 분은 이게 경상북도라는 지역의 특성이라고 했다. 정말 그곳은 그 정도의 인식을 가진 곳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어떻게 당에 대한 지지가 살인해선 안 된다, 라는 기본 윤리 위에 있을 수 있겠어. 그 순간 그 당 지지자가 지금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칼로 찔러 죽이려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분은 떠나면서 "xx로 놀러오세요, 정말 볼 게 많은 곳이에요"라고 했다. 그치만 저는 빨갱이인걸요…. 알겠다고는 했지만 무서워서 못 갈 것 같다.
#2. 시골 사람이 불금을 보내는 법
1. 살구쨈을 넣은 요거트에 위트빅스 일곱 개를 먹는다.
2. 해변으로 나간다.
3. 발을 모래에 담그고 파라솔 밑에서 책을 읽는다.
4. 책을 다 읽으면 바다로 나가 꼬시래기와 파래를 딴다.
5. 오는 길엔 갓과 쑥을 캔다.
6. 꼬시래기와 전날 딴 고둥으로 미역국을 끓인다.
7. 먹는다.
8. 잔다.
#3. 내가 인복이 많은 이유
성격이 괴팍한 것 치고는 인복이 꽤 있는 편이다.
힘들게 맞벌이를 하며 사는, 사실상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며 사는 동생이, 직접 만든 살구쨈과 내가 좋아하는 아몬드나무 쟁반과 위트빅스와 로션을 보냈다. 자기 것 살 때 한 개씩 더 샀다고 했다.
얼마 전에 방문한 언니도 내게 적선만 실컷 하고 떠났는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동생이 번번이 마음을 쓰니 내가 허투루 살 수가 없다.
사랑하는 정선아, 너의 살구쨈과 위트빅스를 앉은 자리에서 일곱 개를 먹어 치웠어. 말들이 왜 환장하고 건초를 씹어대는지 알게 됐어. 건초는 참으로 맛있는 거더라. 고마워.
나는 진짜 음흉하고 음침하고 거지에다가 맨날 도망만 다니는데, 내 주변엔 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은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그들이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을 그냥 못 지나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인 것이다.
플러스,
아침마다 내 주변 사람들이 평안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자애 기도라고 해서 불교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이곳의 존재들, 그리고 우주의 모든 존재들의 평안을 비는 기도를 하는데, 4년 째 하는 중이다. 그 주변 사람 리스트에 가족과 정선이와 나의 첫문장 문우들과 몇몇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래서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당신들은 나를 떠날 수 없어.
참고로 주변 사람들이 잘 되기를 바래야 나도 잘 된다. 그것은 진짜 진리다.
나의 사이버 친구들아, 그대들도 다 잘 되십쇼. 그리고 내게 위트빅스를 한 박스씩 보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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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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