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와 고통받는 사람들
살면서 들어온 수많은 전쟁 뉴스는 텔레비전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 같았다.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내 주변은 평화로웠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굴러가고 있었으니까.
브라질에서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전쟁이 터졌다. 평소에 뉴스를 관심 있게 보지 않는 데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직후라 도시 구경과 적응에 바빠 전쟁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 아마 들었어도 예사로 넘겨 버렸을 거고.
지난 금요일부터는 쭉 시골 마을에 머물고 있었는데, 여전히 전쟁 소식이 매일 들린다. 언뜻언뜻 지난 3년간 유럽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출신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다. 비상상황에 주변을 추스르며 정신이 없을 텐데,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묻는 것은 싸구려 호기심일까? 당연히 괜찮지 않을 텐데 괜찮으냐고 묻는 것은 어이없는 행동인가 싶어서 문자를 보내기가 좀 고민스러웠다.
타티아나
2019년 여름, 유럽에 도착했다. 첫 도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호스텔 방에서 타티아나를 만났다. 이미 3년쯤 된 일이라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겨우 몇 마디 정도 나눈 게 다일 거다. 타티아나는 아프다며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내가 놀다 오니 내 침대에 쪽지를 남겨놓고 체크아웃을 했더라고. 그런데 마음 예쁜 쪽지에 크게 감동받았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오면 자기가 도시 구경을 제대로 시켜주겠다고.
타티아나가 연락처를 남겨둔 덕에 그 후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타티아나는 유럽 여행 중인 나를 걱정해 주었고, 자기는 화학 박사학위를 밟고 있으며 고분자를 재활용하는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타티아나는 두 달 전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모르고 생일 파티를 했다.
고민하다 일요일 아침 타티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타티아나의 가족은 토요일에 겨우 키예프를 떠나 다른 도시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지금 유럽 곳곳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는데, 다른 나라로 떠날 계획이 있냐고 물었더니 일단은 지금 있는 곳에서 키예프에서 탈출하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예정이란다.
타티아나가 자기 집에서 3-5분 거리에서 일어난 폭격이라며 이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알레나와 올렉산드르
이 친구들 역시 2019년에 만났다. 불가리아 소피아에 있는 동안 카우치 서퍼들을 좀 받았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간 친구들 중 일부. 둘은 친구인데 돈 없이 하드코어로 여행 중이었다. 히치하이킹이랑 카우치서핑으로만 여행한단다. 데이터도 없이 여행하는데, 길거리에서 무작정 히치를 시도하다 히치가 안 되면 야영도 한다고. 겨우 밤늦게 히치에 성공해서 우리 집엔 밤 열두 시 넘어 도착했다. 오면 배고플까 봐 저녁으로 파스타를 좀 많이 만들었는데 면이 퉁퉁 불었더랬지.
다음날 바로 다시 히치하이킹으로 출발해서 오랜 시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알레나(여자분)는 불춤 추고 천연색으로 머리를 염색하는 하드코어, 올렉스(남자분)는 굉장히 센티멘털하고 섬세하면서 약간 우울한 친구였는데, 전쟁 소식을 듣고 덜컥 올렉스 걱정이 되었다. 18세부터 60세 우크라이나 남자들은 모두 징병 대상이라는데, 올렉스 괜찮을까?
올렉스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 다음은 올렉스의 답변.
"우린 우크라이나 서쪽 이바노 프랑키비츠에 사는데, 언제든 상황이 나빠질 순 있겠지만 아직 여기는 괜찮아. 여긴 포격은 딱 한 번 있었어.
그런데 우크라이나, 아니 전 세계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이 공포스러운 상황이 끝날 수 있도록 니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을 해줘! 전쟁 반대 서명하고, 한국 정부에 청원하고, 온라인으로 의사 표명을 해줘. 니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려줘. 그 모든 행동들이 큰 도움이 될 거야!"
올렉스의 답변이 바로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세르게이와 나탈리아 부부
이 친구들은 작년에 몬테네그로에서 만났다. 몬테네그로 도착 전 페이스북 그룹에 집을 찾는 질문을 올렸었는데, 세르게이가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친구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었는데, 나탈리아가 영어를 전혀 못하고, 세르게이는 자기주장이 매우 강해서 불편했다. 세르게이는 수시로 쪽지로 요청하지 않은 도움을 주거나 둘의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계속해서 채팅을 주고받는 걸 힘들어하는 나는 이것 역시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때 세르게이를 불편한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르게이는 러시아인들과는 친구 하지 않는다고 했고, 러시아인들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감정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너무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 했고, 우리가 우크라이나 수도를 키예프(Kiev)라고 부르는 걸 듣고 기분 나빠하며 크위브(Kyiv)라고 정정해 주었다. 찾아보니 키예프는 러시아어에서 온 단어이고 크위브는 우크라이나어 표현. 이제 여기서부터는 크위브로 표기하는 걸로!
연락해보니 이 친구들은 다행히도 아직 몬테네그로에 있다고 한다. 몬테네그로에는 러시아인들이 상당히 많은데, 별 갈등 없이 이 친구들이 무사히 몬테네그로에서 지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본인들은 괜찮지만 부모님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에 계시단다. 그리고 세르게이 부부의 친구들 역시 폭격이 일어나고 있는 크위브 지역에 있다고. 기도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슬퍼하고 있다. 보스니아 전쟁 소식을 외국에서 듣고 있던 보스니아 친구도 가족과 친구들 소식을 들으며 큰 죄책감과 괴로움을 느꼈다고 했는데, 자기 몸은 안전하더라도 고국이 전쟁에 휩싸이면 그 감정이 어떨까...
미샤
미샤는 작년 가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났다. 미샤는 부다페스트 페이스북 그룹에서 드론 갖고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관광구역에서 비행 허가를 못 받아서 아마 도와주기 어렵겠지만 다른 사람 찾아보고 정 안되면 나에게 연락하라고 했는데, 연락이 왔다. 다시 한번 난 여기 드론 비행 규칙을 잘 모르고 드론 초보라 어렵다 했는데, 이 친구가 부다페스트에서 자기 자전거 타는 장면을 드론으로 찍고 싶다며 조르고 조르기에 다뉴브강 중간에 있는 마르기트 섬에서 드론을 날리기로 했다. 저녁 6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안 온다. 자기가 부탁해놓고 연락도 없이 늦게 오는 건 뭐지? 7시로 착각을 했단다. 그 시간에 나는 이미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정말 꿈이라고 사정을 하기에 다음날 아침 다시 섬으로 나갔다. 그날따라 섬에서 찬송가가 들리고 섬이 유난히 더 복작복작하다. 이 친구가 원하는 장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험 비행을 한 후 본격적으로 촬영을 하려는데 사복 경찰이 두 명 나타났다. 알고 보니 오늘 교황님이 오는 날이고 섬에서 종교 행사가 열려서 드론을 날리면 안 된단다. 경찰들은 매우 친절한 태도로 우리 여권 번호와 이름 등을 모두 알아갔다. 정작 미샤는 가짜 이름과 생일을 댔단다. 이 친구는 이날 오후 비행기로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미샤 덕에 이미 이름이 적혀버려 조심한다고 남은 한 달간 부다페스트에서는 드론을 더 이상 못 날렸다. 아오.
"미샤, 괜찮아? 무사하니? 우크라이나에서 무사히 빠져나왔어?"
"아니, 난 안 떠났어, 나랑 우리 가족은 안 떠날 거야. 그들이 우리 땅을 점령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푸틴은 어린이와 시민들을 죽이고 있어! 벨라루스 대통령 그 나쁜 놈이랑 둘 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야!"
알렉스와 자니
스무 살 디노 커플인 알렉스와 자니 이야기는 예전에 다른 블로그에 종종 올렸었다. 삼사 년 전 러시아인 자니가 이스라엘 여행을 갔다가, 길거리에서 노래하던 이스라엘인 알렉스를 만나 연인이 되었다. 자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둘이 여행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몇 달간 생이별 상태로 있다가 재작년 말 다시 만났다.
알렉스는 엄마가 우크라이나인이라 히브리어(이스라엘 언어)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어도 모국어로 구사한다.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는 상당히 유사해서 영어를 못하는 자니와는 러시아어로 대화한다.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알렉스가 조지아에 법인을 세우면서 조지아 거주자가 되었고, 자니도 알렉스를 따라 조지아로 이사했다. 조지아 역시 러시아에게 호되게 당한 역사가 있어 이번 전쟁이 터지면서 반러 감정이 더욱 심해졌단다. 자니는 조지아에서 무사할까? 늘 올라오던 페이스북과 인스타 스토리가 뚝 끊겨 더욱 걱정이다.
한편, 이 상황에도 한껏 멋을 부린 사진들을 올리는 러시아 친구도 있다. 이 친구랑은 이제 안 놀아야지. 그 친구가 지내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시위가 한창일 텐데. 해마다 새해를 맞이할 때 푸틴의 연설을 꼭 봐야 한다더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걸까.
포장하지 않고 내가 만나온 친구들에 대해서 내 경험을 그대로 썼다. 이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여행을 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고 오늘과 내일을 계획하며 어제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어제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생일을 축하하고 여행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일을 하는 평범한 삶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감사하게도 유럽 곳곳의 국경이 이들에게 열렸고, 피난을 돕는 차량들과 이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겠다는 사람들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친구들이 부탁한 대로 전쟁 중단 서명 운동, 기도, 각국 정부가 행동을 촉구하도록 목소리를 내주세요.
여러분의 하루가 더없이 평화롭기를 기도합니다. 우크라이나인들도 오늘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평화를 다시 누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