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을 읽고
타인의 행동에 관심이 많다. 나는 저렇지 않은데 그(혹은 그녀)는 왜 그렇게 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판단을 내리는지, 저렇게 했을 때 나의 행동과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축적된 관찰은 판단 근거로 이어진다. 어느 새 마음 속에는 흐릿한 잣대가 하나 세워지는 것이다. 저건 안 좋은 거구나, 이렇게 해야겠다. 좋은 결과는 이런 행동에서 비롯되는 구나 등등. 그간의 관찰은 내가 더 유의미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고 믿었다. ((김형경이 말하는 감정 분류))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한 인간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풍경에는 한계가 있다. 가령, 나 같은 경우는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십 여명의 지역 친구와 같은 수준의 대학에서 공부한 수도권 지인, 그리고 특정 직업을 얻기 위해 숙식을 함께하며 발로 띈 동기. 세 부류로 한정된다. 이 외에도 있을 수 있지만 10명 미만은 표본으로 삼기 힘들다.
제한된 범위에서 도출해 낸 결과란 지극히 편협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난 그걸 기준으로 세상사를 판단하고 있었다. 어느새 내 마음에 들어온 잣대로 그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는 '꼰대'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법륜스님은 말하기의 하수와 고수에 대해 말한적이 있다. 제일 하수는 화나는 대로 다 말하는 사람이고 말을 하지 않고 참는 것은 그보다 낫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참으면 자신에게 스트레스가 쌓이니 중수에 불과하단다. 제일 고수는 참을 것이 없는 상태라며, 마음속에 '시비분별'이 없으면 이 단계에 이를 수 있음을 말했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를 떨칠 수 있으려면 어떤 경험이 필요할까.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이야 말로 다양한 인간행동을 이해하고 시비의 잣대를 제거하는 도우미가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간접경험에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시간과 돈이 대표적이다. 누구에게나 한정적인 이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이 한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게 된다. 둘은 밀접하게 이어있다. 가령, 1시간을 보내기 위해 특정 행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시간만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거의 없고, 돈으로 무언가를 거저 얻으려하는 태도는 황금만능주의적 발상이다. 그런 태도의 귀결은 질 낮은 경험의 축적으로 인한 성급한 일반화거나 어떻게든 돈만 많이 벌면 된다고 여기며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쇼핑보다, 음주가무보다 '경험'에 하는 지출이야 말로 자신에게 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경험의 방식에는 많은 게 있다. 투입 비용이 큰 소수 종목을 제외하면 운동은 좋은 배움터다. 심신 단련은 물론이고, 특정 직군에 구애받지 않은 대인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여행도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의 사고는 다분히 공간의 영향을 받기에 낯선 장소는 새로운 생각의 씨앗이 된다. 매번 집필 공간을 바꾸는 하루키의 세계가 어두운 독방에 갇힌 히키코모리의 그것과 비교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종류를 불문하고 경험을 쌓자. 타자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게 아닌, 자신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체득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편향을 방지하기 위해 분야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핵심은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에게 집중한 경험이야 말로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남에게 보이는 관심을 반만 줄여도 생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게슈탈트의 말이다. 우리가 '남에게 보이는 관심'이란 대체로 시기심이거나 의존성이거나 투사의 감정 같은 것들의 결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