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사람의 일대기>>
부럽게도 넌 오랜 과거부터
세계 각지를 여행했더라.
네 조상들은
히말라야 남쪽,
인도와 미얀마, 중국의 깊은 산골에서
야생으로 자라다가
사람들을 따라서 점점 멀리 떠나게 되었어.
그 후,
먼 길 돌아 바다를 건너
유럽과 지중해를 거쳐간 너희 선조들은
콜럼버스와 스페인 탐험선이 드나들던 시대에
따뜻한 바람 부는 플로리다까지 닿았을 거야.
그곳에서
과즙이 가득한 단맛의 오렌지들이
네 사촌들처럼 무성하게 자라서 자리를 잡게 돼..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무렵부터
너와 닮은 감귤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대.
너도 사람 많은 본토에서
살고 싶었겠지만
추위에 약했던 탓에
그나마 따뜻한 제주도로 내려와
긴 세월을 보내야 했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씨가 거의 없고 까기 쉬운 온주밀감인 너는
한동안 일본에 머물르면서
더 부드럽고 순한 성격으로 바뀌었어.
그 뒤, 프랑스 선교사의 손에 들려서
다시 제주로 돌아와
지금의 너로 자리매김했어.
"먼 조상들 때부터 따지자면
제주에서만 산 세월이 1500년,
그 정도면
너는 고향이 제주도라고 해도 되겠다."
넌 뱃살이 얇고 온몸이 울퉁불퉁할수록 멋있어.
배꼽이 노랗고
꼭지 부분이 진한 초록빛을 머금은 노란색이어야
속내도 달콤한 성격이다.
꼭지가 싱싱하지 않고 말라 있다면
수분이 적어
피부에 광채가 나지 않지.
역시 피부 관리는 중요해.
하지만,
조금 덜 달아도 괜찮아.
손으로 살짝 어루만지면
내 오감이 너의 향을 음미하며
너를 충분히 달콤하다고 느껴.
거기에 내 손의 온기로
차가운 기운을 천천히 걷어내면
너는 더욱 달아질 거야.
그만큼 넌 공감을 잘하고 맘이 따뜻한 놈이야.
테이블 위 귤 하나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굴리며,
이 멋진 놈의 긴 인생사를
조용히 상상해 본다.
(오늘의 기록: 큰 머리 귤사람과 ‘멋과 맛 사이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