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레딩거의 지갑
당시 나에게 ‘암호화폐 지갑’이라는 것은
은행 계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제시한
‘Trust Wallet’이라는 은행을 이용해 적금을 하고
생성 화폐로 돌려받는 것으로 이해했다.
적립 만기를 기다리며 느끼는
두근거림과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데드라인 사건을 겪고 나서 지갑의 구조를 공부하니
만기 된 적금을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프로젝트가 권했던 지갑구조는
일반적인 암호화폐지갑과는 설계부터 달랐다.
보통의 지갑은 ‘시드 문구’라는 열쇠가 있고
사용자가 자유롭게 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있지만,
그 지갑은 ‘패스키’만을 열쇠로 사용했고
네트워크 추가 기능(타 은행 이체 기능)조차 없었다.
사용자 스스로는
출금도, 이체도 할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초보자인 내 눈엔
비슷한 은행 계좌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나에게 그 지갑은
입금은 자유롭지만
출금은 회사에서 허락한 네트워크만 가능했다.
또, 원천적으로 회사 승인 없이는 출금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개발사에서는 이 치명적인 결함과 사용법을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았다.
입금은 되지만 출금은 안 되는,
잔고가 숫자로 보이기만 하는 계좌.
그때의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을 수 있다는 가설이
오히려 상식적으로 느껴졌다.
내 자산은 분명히
지갑 안에 존재(살아있음)하지만,
내가 만질 수 없기에
사라진 것(죽어있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밤마다 같은 꿈을 꾸었다.
정성스럽게 키운 과일을 수확하러
재배장 문 앞에 서 있었지만,
그 문은 내가 열기에 너무 정교하고 무거윘다.
반투명한 비닐막 너머로
잘 익은 과일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시기를 놓치면 과일이 상할 텐데......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가위에 눌려 잠에서 깨었다.
계좌에 찍힌 숫자로만 확인 가능한 내 적금은
존재하지만 만질 수 없고,
보이지만 가질 수 없는 상태였다.
비닐막 너머 내 과일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