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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록홈즈 Oct 26. 2021

주택살이 프로젝트 시작

내 집을 만나기까지


2020년 여름. 아파트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콘크리트 벽이 아닌 벽돌이나 흙으로 지어진 한옥, 주택에서 한 번쯤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화된 코로나에 지쳐 바깥공기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쐬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으리라.


주말 아침마다 조깅을 하며 동네의 골목골목을 누볐다. '이런 집은 어떨까?', '이 주택은 얼마나 하려나?', '딱 이 사이즈가 좋을 것 같아!' 집주인은 팔 생각도 없는데 신랑과 나는 몰래몰래 김칫국을 마셔가며 우리 가족이 살 집을 머릿속 담벼락에 그리곤 했다.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부동산 두 곳을 무작정 찾아가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젊은 부부가 매주 찾아오니 귀찮기도 하고 한편으론 기특(?) 하기도 했는지 좋은 매물이 나오면 은근슬쩍 연락을 주셨다.


한 번은 귀신이 나올 법한, 폐가에 가까운 한옥을 보게 되었다. 낡디 낡은 대문을 열고 뒷간(맙소사 뒷간이 있다)을 지나 조그만 마당에 발을 디디는 순간 "와.." 감탄이 흘러나왔다. 마당 한가운데에 복숭아나무가 탐스럽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에 혹해 이 집을 사야겠다 결심을 하고 집주인과 연락을 했다. 3년간 문의 한 번 없던 폐가를 누가 사겠다고 하니 집주인 마음에 변덕이 생긴 걸까. 금액과 상관없이 팔 마음이 없어졌다는 답변이 왔고 그렇게 한옥은 날아갔다. 햇살이 내리 비추던 복숭아나무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의 집이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현실주의자인 나는 단번에 마음을 접었지만 이상주의자인 신랑이 그 집에 꽂혀버렸다. 대로변에 있는 30년 된 집이었는데 신랑은 집 내부도 보지 않고 그 집을 사야겠다고 했다. 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은행과 부동산을 뛰어다니며 발버둥(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을 쳤지만 그 집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돈 많은 누군가.

집이 계약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그날 밤 우리는 쓴 소주를 마셨다. 건배사는 '돈 있는 사람이 다 가져가는 더러운 세상!'




그리고 올해 6월 토요일 아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조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동네에 커피점이 새로 오픈했길래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유난히 줄이 길어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는데 예전엔 눈에 안 들어오던 한 벽돌집이 눈에 띄었다. 신랑과 나는 눈이 마주쳤고, '커피 마시고 부동산에 들러서 물어보자'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때, 기적처럼 부동산 사장님이 커피점 앞을 지나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우연이었거늘) 우리는 사장님을 붙들고 인사를 나눈 뒤 벽돌집에 대해 물었고 사장님은 한 통의 전화를 한 뒤 바로 보러 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커피를 들고 조깅복을 입은 채 붉은 벽돌집에 들어갔다. 주인 할머니가 10년 넘게 살고 계신 낡은 집의 상태는 보나 마나 뻔했다. 하지만 옥상에서 내려다본 골목의 전경은 뻔하지 않았다. 한옥의 기와가 옹기종기 보이는 그 집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번에도 놓치면 지난 1년간 마음먹은 주택살이 프로젝트는 막을 내려야만 할 것 같았다. 재빠른 고민 끝에 우리는 낡고 붉은 벽돌집을 우리 집으로 맞이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주택살이 프로젝트는 반보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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