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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록홈즈 Oct 26. 2021

드나들기 쉬운 집

주택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1층이지만 아래 필로티가 있어 2층 정도의 높이다. 4년 전 이 집을 둘러보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아래층에 집이 없다는 것과 모든 방의 창문이 바깥으로 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4년간 아이들에게 집에서 뛰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돼 좋았지만 그보다도 거실에 있는 커다란 창으로 계절의 미세한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그게 참 좋았다. 어디 그뿐인가. 저 멀리 인왕산이 깨끗하게 보이는지 흐릿하게 보이는지에 따라 그날의 미세먼지 상태를 어플 없이 알 수 있다는 점도 이 집의 특혜였다.


이토록 좋은 아파트를 떠나 주택으로 가려고 결심한 이유는 아파트라는 구조물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답답함도 한몫 하지만, 그보다는 물리적인 이유가 더 크다. 다름 아닌 나의 아들에게 말이다.


올해 열 살인 첫째 아이는 지금껏 혼자서 밖에 나가본 적이 없다. 겁이 많은 기질의 아이라 학교나 도서관, 슈퍼마켓, 문방구 등 어디든 외출할 때면 늘 엄마인 내가 동행을 해야 한다. 그 목적지가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일지라도 말이다. 이유를 골똘히 생각해보니 아이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바깥세상의 땅에 발을 디디기까지 이 아파트에는 아이가 넘어야 할 관문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또는 계단으로 내려가서 로비를 지나 비밀번호를 누르고 두 개의 현관문을 지나야지만 비로소 도착하는 바깥세상. 그마저도 놀이터를 지나 돌계단을 올라가야 아파트 단지 밖, 즉 진짜 외부 세계로 나가는 셈이다.



코로나 이후 집콕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과 함께 응답하라 1988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 했다. 이웃 간의 정을 넘어선 가족 같은 쌍문동 주택가의 이야기를 보면서 아이들은 무척 신기해하면서도 즐거워했고 엄마가 어렸을 때도 저렇게 살았는지 자주 물었다.


'엄마도 너희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아파트에서만 살아봐서 저런 경험을 해보진 못했어. 그래도 언젠가 한 번쯤 저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 무심하게 답했던 날들이 하루 이틀 조금씩 쌓이다 보니 그 '언젠가'가 과연 언제일까 하는 질문이 스스로에게 들었다. 5년 뒤? 10년 뒤? 아이들이 모두 출가하고 난 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앞당기고 싶었다. 반드시 내가 주택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내 아이가 주택에 살면 좋을 이유가 많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관문이 대폭 줄어든다는 것. 주택가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에 내 아이가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것.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이상할 게 없던 아파트보다는 양쪽 집과의 교류를 통해 아이가 조금 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불과 몇 가지의 이유 만으로도 나는 주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아이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아이가 혼자 책가방을 매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외치는 장면. 학교 끝나고 집 방향이 같은 친구와 걸어오다가 "우리 집에서 놀다 갈래?" 서슴없이 말하는 장면. 누군가에게는 별게 아닌 장면이 나에게는 꿈꾸던 장면이기에 나는 내 아이도, 아이의 친구도, 정다운 이웃들도 드나들기 쉬운 그런 집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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