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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록홈즈 Nov 17. 2021

안녕하세요

다정한 동네


다른 건 몰라도 내 아이가 인사 하나만큼은 잘하는 아이로 크길 바랐다. 인사만 바르게 잘해도 사랑받는 아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더불어 나도 예절 교육을 잘 시킨 엄마로 보일 수 있으니까.


첫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친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잘 가지 않을 만큼 낯가림이 심했다. 아이의 기질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예의 바른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아이에게 늘 인사를 강요했다. 처음 보는 어르신, 처음 보는 이모, 처음 보는 선생님,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켰고, 아이가 인사를 안 하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핀잔을 주곤 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아이를 꼭 껴안으며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엔  내가 너무 늦게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이미 아이의 마음에는 인사에 대한 거부감이 깊이 박혀버렸고, 소리 내어 인사하는 것이 녀석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 내 아이를 지켜보다가 문득 잊고 지냈던 장면이 떠올랐다. 인사하는 것이 불편하고 쑥스러워 늘 엄마 치맛자락 뒤에 숨어있던 어릴 적의 내 모습을.

나를 쏙 빼닮은 아이에게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10살의 내 아이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인사의 즐거움을 몸소 느껴보기로.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버스나 택시를 탈 때에도, 아이의 친구들에게도, 가게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에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먼저 건네니 생각보다 많은 것이 돌아왔다. 미소, 에너지, 친절, 배려, 온정, 평온..

인사 한마디 했을 뿐인데 세상이 더 예쁘게 느껴져, 이런 게 바로 인사의 본질임을 알아가는 중이다.




동네의 골목을 거닐다 보면 집 혹은 카페 앞에 의자가 놓여있는걸 자주 본다. 대부분은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 그곳에 앉아 마을버스를 기다리거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신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분도 계신데, 특히 아이들에게는 티 없이 맑은 미소로 손을 흔들어주시기도 한다.


의무감을 도려내고 보면, 인사라는 게 얼마나 다정하고 달달한 표현인지 느낄 수 있다. 동네의 길거리에 놓인 의자만 봐도 이 동네의 다정함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상  아이가 예전의  바람대로,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지 않는다. 반대로  아이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역시 동네의 아이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기쁘게 인사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나와  아이가 사는 동네가 다정한 동네가   있도록 나부터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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