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동네
다른 건 몰라도 내 아이가 인사 하나만큼은 잘하는 아이로 크길 바랐다. 인사만 바르게 잘해도 사랑받는 아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더불어 나도 예절 교육을 잘 시킨 엄마로 보일 수 있으니까.
첫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친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잘 가지 않을 만큼 낯가림이 심했다. 아이의 기질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예의 바른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아이에게 늘 인사를 강요했다. 처음 보는 어르신, 처음 보는 이모, 처음 보는 선생님,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켰고, 아이가 인사를 안 하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핀잔을 주곤 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아이를 꼭 껴안으며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엔 내가 너무 늦게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이미 아이의 마음에는 인사에 대한 거부감이 깊이 박혀버렸고, 소리 내어 인사하는 것이 녀석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 내 아이를 지켜보다가 문득 잊고 지냈던 장면이 떠올랐다. 인사하는 것이 불편하고 쑥스러워 늘 엄마 치맛자락 뒤에 숨어있던 어릴 적의 내 모습을.
나를 쏙 빼닮은 아이에게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10살의 내 아이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인사의 즐거움을 몸소 느껴보기로.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버스나 택시를 탈 때에도, 아이의 친구들에게도, 가게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에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먼저 건네니 생각보다 많은 것이 돌아왔다. 미소, 에너지, 친절, 배려, 온정, 평온..
인사 한마디 했을 뿐인데 세상이 더 예쁘게 느껴져, 이런 게 바로 인사의 본질임을 알아가는 중이다.
동네의 골목을 거닐다 보면 집 혹은 카페 앞에 의자가 놓여있는걸 자주 본다. 대부분은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 그곳에 앉아 마을버스를 기다리거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신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분도 계신데, 특히 아이들에게는 티 없이 맑은 미소로 손을 흔들어주시기도 한다.
의무감을 도려내고 보면, 인사라는 게 얼마나 다정하고 달달한 표현인지 느낄 수 있다. 동네의 길거리에 놓인 의자만 봐도 이 동네의 다정함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내 아이가 예전의 내 바람대로,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지 않는다. 반대로 내 아이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나 역시 동네의 아이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기쁘게 인사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나와 내 아이가 사는 동네가 다정한 동네가 될 수 있도록 나부터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