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공중 화장실에서 자주 보는 메시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나는 무척 단순한 사람이라 이런 글귀를 볼 때마다 내면에 큰 울림이 퍼지는데, 덕분에 변기를 사용하고 나면 다음 사람이 조금이나마 편히 일을 볼 수 있도록 깨끗하게 마무리(?)를 짓고 나오는 편이다. (물을 내리고 변기 뚜껑을 열고 나온다거나 등..)
식당에 가서도 마찬가지.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다 보면 유난히 식탁 위가 번잡해지고 더러워지기 마련인데, 다 먹고 나서 적어도 수저를 한 곳에 모아놓거나 물컵을 포개 놓는 것, 아이들이 흘린 음식을 최대한 닦아놓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내가 아름다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떤 장소든 사람이든 내가 머물렀고 도움을 받았다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떠나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한 집에서 4년 하고도 4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냈다.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사랑했던 집이기에, 꼼꼼하게는 아니더라도 자주 쓸고 닦으며 집을 돌보았다. 청소의 황제급인 우리 엄마는 이 집에 올 때마다 구석구석에 낀 때를 벗기며 잔소리를 하셨지만 내 선에서는 늘 최선을 다해 돌본 집이었다.
그랬던 집이 이상하게 이사 날짜가 다가올수록 하나 둘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led 전등이 갑자기 나가질 않나, 4년 이상 잘 쓰던 싱크대가 막히질 않나.. 집 곳곳에서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듯했다.
'어차피 다음 사람이 여기저기 손 볼 집인데..' 하는 생각에 삐걱거리는 부분들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사 며칠 전, 지금까지 살면서 두어 번 했을까 말까 한 안방 화장실 청소를 막 마치고 나온 신랑이 이런 말을 하는 거다.
"호텔에서 단 하루를 지내도 대충 정리정돈을 하고 나오는 게 예의인데, 4년 이상 살았던 집을 이렇게 대하면 안 되지!"
2년 만에 청소한 사람 치고는 조금 많이 뻔뻔한 말이지만,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는 화장실 등, 현관 등, 주방 펜던트, 거실 직부등에 꼭 맞는 전구를 사서 전등을 교체하고, 막힌 싱크대도 사람을 불러 뚫었으며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를 닦고, 두고 가는 물건들은 각별히 더 신경을 써서 청소를 했다.
이삿날.
짐이 모두 빠지고, 말끔하게 민낯을 드러낸 집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우리 가족만큼 다음 가족에게도 좋은 집이 되어달라고 속삭였다. 순간 흐르는 눈물을 마스크로 꼭꼭 감추며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