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사 이야기
하필이면(?) 레지던스가 동향인 바람에 아이들은 7시면 눈을 떠 애미를 깨웠다. 우리는 분홍빛으로 물드는 일출을 매일 바라보았다.
이사 전 날, 갑작스레 보관이사를 결정하고 리모델링 기간을 늘렸다. 지낼 곳이 없어 레지던스를 급히 예약했다. 예정대로라면 1월 5일에 집에 들어갔어야 했지만 공사 기간이 일주일 더 연장되는 바람에 꼬박 2주일을 밖에서 지냈다. 바지 한벌, 티셔츠 3장, 속옷 3개로 14일을 버티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본의 아니게 바지와 속옷 쇼핑을 했다. 후훗)
12월의 마지막 날, 유난히 기운이 없던 둘째가 새벽에 토를 다섯 번이나 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나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행히(?) 장염이었다.
레지던스에 전기밥통이 없어서 쌀을 불려 흰 죽을 3일 동안 만들었다. 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은 둘째는 가장 먼저 감자튀김이 먹고 싶다고 했고 함께 감자튀김을 폭식한 첫째는 다음날 토를 하기 시작했다. 장염이었다.
쌀을 불려 흰 죽을 다시 3일 동안 만들었다. 미식가인 첫째는 장염 중에도 미식을 따져 맛있는 간장을 한 병 샀다. 그렇게 레지던스에서의 절반은 죽만 쑤며 지나갔다. (일명 레지던스 죽쑤니)
아이들이 아프니 집이 더더욱 간절했다. 익숙지 않은 주방에서 익숙지 않은 냄비로 끓인 죽 대신
우리 집에서 낡았지만 손에 익은 냄비로 두 녀석에게 밥을 해 먹이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집에.
우리는 이사를 왔다.
날은 어쩜 이리도 추운지 스타킹에 양말을 두 개나 신었는데도 발이 꽁꽁 얼어붙었다.
주택으로의 이사는 아파트와는 확실히 달랐다. 좁은 골목에 작은 사다리차가 지나가기 위해선 이웃들의 양해가 필요했고, 사다리차가 오르내릴 때마다 행여나 전깃줄에 닿아 동네 전체가 정전될까 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이삿짐이 모두 집에 쑤셔 들어오고 이사가 끝났다. 난장판이 된 집이었지만 안정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낯설기도 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두 달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락날락했던 집인데, 레지던스에서 지내는 동안 집에서 살짝 벗어나 있고 싶어서 들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저녁이 되어 이웃집에 불이 하나 둘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 준비했던 선물을 들고 인사를 드리러 갔다. 먼지와 소음, 일하시는 분들의 담배 연기, 주차로 인한 불편함 등 분명 번거롭고 유쾌하지 않은 기간이었을 텐데.. 괜찮았다고, 이사 온 걸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셔서 이젠 우리가 정말 이 동네의 주민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우리 집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동향 레지던스에 단련이 되어서인지 침대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이 반가웠다.
반가움도 잠시, 널브러져 있는 짐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버릴 건 버리고 왔는데도 짐은 왜 이렇게 많은지. 빨랫거리는 왜 이렇게 끝이 없는지. 쓰레기는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신랑은 도대체 왜 양말이 50켤레가 넘는 건지..
혼자서 정리하며 투덜투덜거리다가 아이가 그린 우리 집을 보니 다시 설렘과 따스함이 느껴진다.
우리 집.
이제 이곳이 우리 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