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계단 아래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지금의 집으로이사를 왔는데 그 아이가 벌써 4학년이다. 그러니 주택에 산지 3년 하고도 7개월이 지난 것이다.
이 녀석이 아직까지도 집에서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계단 대신 미끄럼틀을 설치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속으로 매번 비웃었는데 오늘 뼈저리게 후회했다. 집에 미끄럼틀을 만들었어야했는데!!
어제 동네를 걷다가 맨홀 뚜껑을 잘못 밟고 발목을 접질렀다. 워낙 잘 넘어지고 잘 삐고 잘 다치는 편이라 이번에도 냉찜질만 하루이틀 하면 낫겠거니 했다. 그러나 내 나이를 간과했다. 얼굴에 이불자국이 나면 하루죙일 없어지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회복 탄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까먹고 있었다. 발목을 다친지 하루가 지나자 발목이 퉁퉁 붓고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곧바로 병원에 갔다. ’대충 며칠만 약 먹으면 낫겠지-‘ 생각하며.
결과는 예상을 제대로 빗나갔다. 인대가 심하게 부어, 후유증 없이 나으려면 깁스를 해야 한다는 것. 깁스라니 깁스라니 오마이깁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깁스를 왜 하필 이런 집에 살고 있을 때 해야한단 말이냐. 계단이 무려 44개나 되는 계단 맛집에!!
주방은 1층, 거실과 방은 2층, 티비는 3층에 있어서 하루에 50번은 족히 오르내리는 우리집 계단. 자다가 목이 말라도 1층으로 내려가 물을 마셔야 하고, 밥 먹다가 세탁기 종료음이 들리면 2층으로 올라가 빨래를 건조기로 옮겨야하는 집. 티비를 보려면 3층으로 가야하고 티비 보다가 엄마가 밥 먹으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면 우당탕탕 1층으로 내려오는 아이들.
이런 집에서 깁스를 하고 살아야한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우선 오늘 1일차 살아본 결과, 나쁘지 않다. 나만 빼고 온 가족이 바빠졌다.
그동안은 아이들이 목 마르다 하면 내가 쪼르르 1층으로 달려가 물을 떠다줬었는데 그런 엄마는 이제 없다. 티비 보면서 밥 먹고 싶다고 하면 쪼르르 옥상까지 밥을 날라다 줬었는데 그런 엄마도 더이상 없다. 오히려 엄마의 심부름이 늘었다. 찜질하게 아이스팩좀 가져다다오. 쓰레기통에 이것좀 버려다오. 윗층에 올라가서 동생을 좀 데리고 오렴. 3층에 가서 야구 보는 오빠에게 밥 먹으러 내려오라고 전해다오 등등.
깁스를 함과 동시에 마음은 조급 답답하나 몸은 편해졌다. 설거지와 빨래, 청소 등의 집안일은 딱히 줄어들진 않았지만 하루에도 가족을 대신해 몇십번씩 계단을 오르내리던 엄마는 이제 이 집에서 볼 수 없다.
엄마 없는 계단 아래에서 가족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것이다.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고 가족을 위한 엄마의 희생이 당연한게 아니었음을 배우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 길에서 휴대폰 화면만 보며 걷다가는 나처럼 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무덤까지 비밀로 해야한다. 하여튼간 깁스를 풀게되는 그날까지 발목 단속, 입 단속 잘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