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보현 Sep 01. 2020

타자기 들고 고고

읽는 게 달라도, 있는 세계가 달라도


 남편과 나는 “단톡방에서 처음 만났다. 대학교 연구실에서 같이 일하던 지인들은 우리를 단톡방에 초대하곤 나가버렸다. 남겨진 우린 그렇게 연애를 했다. 독일 북부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나와 남부에서 포닥을 하던 남편은 왕복 비행기표 300유로의 아주 비싼 장거리 연애를 했다. 남편에게 가는 한시간   반동안 나는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거나 신형철 산문집을 읽었고, 나에게 오는 남편은 초전도 관련 네이처와 사이언스 저널을 읽었다.  우린 만나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읽고 있는게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나와 많이, 아주 많이 다른 남편과 대화를 나눌때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읽고 있는게 달라서.

 남편이 들려주는 물리와 신소재공학은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래도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명하는 남편 덕에 이제는 용어 정도는 얼추 알아듣는다. 아주 아주 조금. 아니 어쩌면 그렇게 알아들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나에게 생일 선물로 네이쳐 논문을 선물했다.  생일에 맞춰 발행된 논문은 남편이 주저자로  수천시간의 실험과 수백번의 토론의 결과물이었다.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나는, 그리고  논문을 생일 선물로 받은 나는 결심했다. 남편이 들려주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보겠노라고.

 읽는게 달라서. 있는 세계가 달라서. 우린 곧잘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 노력했음은 분명하다. 남편과 산책 삼아 갔던 벼룩시장에서 오래토록 갖고 싶었던 타자기를 발견했다. 남편은 바로 돈을 내주었다. 그리고 트람을 타고 버스를 타고 걷고  걸어서 집까지 들어다주었다.  무게가 10kg이었다. 남편도 나의 세계로 들어오고 있던거였다.

 남편과 오늘 서로의  날을 축하해주는 자리를 가졌다. 남편의 특허가 해외에 출원되는 축하자리. 그리고 나의 새로운 계획을 추진하는 축하자리. 남편은 끙끙 들고   타자기가 내가 계획하는 장소에 있길 바란다고 했다. 아직도 많은게 다른 남편이 나의 꿈에 같은 마음으로 응원해주는게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 타자기 들고 가보자!!

작가의 이전글 인생은 옴니버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