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F앙상블 2023 SPICE Ⅰ - Mix & Match> 일신홀
이 편지를 통해 혹시 모를 오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00년 전 어느 클래식 공연의 프로그램이 당대 사람들의 취향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오해 말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이제 막 듣기 시작한 2023년의 사람입니다.
공연을 찾아가기 시작한 게 1년 정도 되었다만
일상 속에서 클래식 음악을 접하기 어렵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
10대 시절 다섯 손가락으로 여러 악기를 다뤘고
20대에는 자작곡을 발매했습니다.
30대엔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2020년대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셨을까요?
맞습니다. 전자음향과 클래식 악기가 접목한 음악이 나오는 초기입니다. 두 대의 트럼펫과 전자음향 또는 피아노 5중주와 전자음향이 구성을 이룬 곡 등이 나왔지요. 전자음향을 반주 삼어 보통의 선율과는 거리가 먼 트럼펫의 숨소리나 입구에 마개를 덮고 내는 소리, 현악기의 음이탈을 멜로디로 차용하여 연주를 이어나갔죠. 연주자들 모두 별도의 인이어를 낀 걸 보면 관객들이 듣는 음원과 다른 소리가 나오는 듯합니다. 예비박과 같은 카운트가 포함된 음원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없던 음악의 형태입니다. 새로운 걸 만들어내다 보니 작곡 과정에서 선율 비슷한 게 나오면 의도적으로 차단한 느낌입니다. 공적이고 정적인 연주홀보다 열려있고 관객 이동의 자유도가 있는 장소에서 연주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2023년 작품에 대한 후기입니다.
2020년도에 듣는 1990년대 작품은 어땠을까요?
<4분 33초>라는 곡으로 잘 알려진 존 케이지(John Cage)의 또 다른 곡 <Amores>를 들어보았습니다. 피아노 현에 정체 모를 것들을 끼워 넣고 연주합니다. 한참 현이 풀린 소리를 내는데 의도적으로 강하게 타건하니 건반 고유의 음과 풀린 음이 동시에 들립니다. 함께 협연하는 드럼세트의 탐탐도 의도적으로 풀려 있어 힘 빠진 소리를 냅니다. 피아노와 퍼커션이 번갈아가며 연주하는데 공통의 주제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존 존(John Zorn)의 <Carny>는 피아노 곡도 들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다른 음악으로 흐름을 바꾸는 곡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요하게 고음부 음계를 치다 고약한 성질을 내듯 저음부 건반을 후려칩니다. 잔잔한 선율에서 소음에 가까운 소리로 이어지니 청중들은 움찔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의 곡 전개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괴로운 시간을, 청각이 예민한 사람들에게 끔찍한 순간을 선사합니다. 가뜩이나 무대와 객석이 가까운 공연장의 특성을 차지하고서라도 관객이 느낄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한 사전 고지가 없었다는 것에 여러 감정이 치밀어 오릅니다. 이걸 의도한 기획이었을까요?
1923년 재구성한 악보로 알려진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초연 당시 절대다수의 청중들은 불쾌감을 표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합니다.
"지붕 위의 고양이가 더 곡을 잘 쓰겠다(The cats on the roof make better music”)"라고 반발하며 말이지요.
2023년,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프로코피예프의 1923년 악보처럼
2123년, 이 편지를 읽는 당신에게 2023년 작품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취향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