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도쿄에 있다면 로댕과 모네를 만나러 가세요

상설전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by 노랑망고


그날 도쿄의 날씨는 일기예보가 말한 그대로 종일 비였다. 후지산 관광 일정은 고이 접어두고 플랜 B를 가동했다. 이름하여 날씨에 상관없이 오전부터 시작할 수 있는 미술관 투어다.


비 오는 날 찾아간 미술관에는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도쿄에는 흥미로운 미술관이 정말 많다. (부럽다). 도쿄도 미술관, 사진 미술관부터 지브리 미술관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데 세 가지의 기준을 세워 비교한 결과 국립서양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에 가기로 결정했다.


국립서양미술관 1/100 모형


내가 세운 기준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첫째는, 가성비 입장료이다.

미술관의 소장 작품들이 전시되는 상설전 입장료가 성인 기준 500엔이어서 큰 부담이 없었다. 무엇보다 현대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한국인은 일본제휴 서비스를 통해 티켓 한 장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기분 좋은 혜택이 아닐 수 없다. (부럽다 22)


기획전과 상설전 입장료 안내(좌측)과 현대카드 이용자는 1층 안내데스크를 방문하라는 친절한 알림(우측)


두 번째는 보유 작품의 인지도이다.

전시에 조예가 깊은 편이 아니다 보니 학창 시절 한 번쯤 들어본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게 흥미롭겠다 싶었다. 로댕과 모네부터 피카소까지 세계적 명성을 토대로 한국 청소년 미술 교과서에 등재된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두 상설전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좌측부터 로댕, 모네, 피카소의 작품을 모두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최애 맛집의 존재이다.

지난 일본 여행 때 현지인 돈가스 맛집을 알게 되었는데 그 해 여행 중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우에노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있어 전시관람 후 점심식사 동선으로 완벽했다. (그날의 내가 부럽다 333)


※ 상호명은 Tonkatsu Yamabe, 위치가 궁금하신 분들을 영문 가게명을 눌러보시라.


가게는 그리 크지않고 음식 사진도 평범한 돈가스처럼 보이는데, 이건 다르다.



그렇게 국립서양박물관 상설전에 들어서자 눈길을 사로잡은 건 군데군데 서 있는 오귀스트 로댕의 검은색 청동 작품이었다.


상설전에 입장하면 펼쳐지는 1층 전시실 전경


전시장 내부는 다소 어두운 느낌이었는데 높은 천창 옆으로 자연채광이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그날의 날씨에 따라 내부 분위기가 달라지는 모습이었다. 입구 안쪽에는 미술관 설립 역사와 상설전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마츠카타 컬렉션에 대한 소개가 안내되어 있다. 내용을 간추리자면, 가와사키 조선소의 초대 사장인 마츠카타 코지로가 유럽에서 수집한 서양미술 컬렉션을 보존 및 공개하기 위해 1959년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통해 설계되었다는 이야기이다.


2층 전시실 전경



작품과 함께 설명이 각국 언어로 상세히 적혀 있다


조각상 사이를 지나 경사로를 올라가면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14세기를 시작으로 연대별로 큐레이팅되어 있었고 작품 옆에는 일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순으로 작품 소개가 적혀 있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1490년대 전반 독일 남부에서 발견된 <성무일과성가집 낱장>


성서와 신앙을 배경으로 한 회화들을 나열되어 있다가 벽면 한쪽에 단선 악보 같은 작품이 있길래 가까이 다가갔다. 찬찬히 살펴보니 15세기 독일 미사에 사용된 사본 낱장이었다. 바로 옆 QR코드를 스캔해 보니 해당 중세 음악 성가를 본 미술관에서 아카펠라로 부르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교회와 공연장처럼 음악이 빠질 수 없는 공간과는 또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었다.


모네의 <보트놀이>와 <수련>


작품 하나하나가 흡입력이 있어 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클레드 모네의 작품으로 채워진 전시실에 이르렀다. 특유의 화법과 풍경이 인상적인 모네의 <수련>을 비롯해 <작약꽃 화원>, <보트놀이>까지 앞선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었다. 모네의 회화 전시실까지 아직 상설전의 반의 반도 안 둘러보았을 만큼 방대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니 여유 있게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킴벨과 전시를 보러 갈 때면 각자 인상 깊었던 작품을 골라 감상을 나누곤 하는데 서로의 픽을 소개해 본다.



킴벨의 pick. 클로드 모네 <생 시메옹 농장의 길>


클로드 모네 <생 시메옹 농장의 길>


길 사이로 우뚝 솟은 나무의 빽빽함, 그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길 위에 그림자. 사실적인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저 길의 끝에는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디스크 통증으로 고생하던 킴벨이었는데 이 그림을 감상할 때만큼은 오롯이 작품에 몰입했다고 하더라. 상설전 전시 작품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작품 앞에 서서 감상했다고 한다.



나의 pick. 빌헬름 함메르쇼이 <피아노 치는 이다가 있는 실내>


빌헬름 함메르쇼이 <피아노 치는 이다가 있는 실내>


상설전 후반부에 전시된 작품이었는데 앞선 회화와 비교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몰래 지켜보는 듯한 시점으로 묘사되어 있어 색달랐다. 킴벨이 발걸음을 멈추고 우더커니 감상했다면, 나는 오히려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었는데, 작품을 쳐다볼수록 서서히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살짝 긴장됐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하나를 진중하게 감상하는 관객들


상설전을 나서는 길,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펴고 빗길 속으로 걸어가려는 찰나 내리는 비는 개의치 않고 생각에 몰두한 청년이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옆에서 생각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주에 가니 샤갈이 반기다 (+첫 도슨트 체험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