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outh California - 13화

곰친구 제시(Jessie)

by 빵호빵호


“제시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머리도 깎고 면도도 했네.”

“응. 이번에 마을에 다녀오면서 정리 좀 했지. 넌 잘 지냈어?”

턱수염 덥수룩 하던 제시가 말끔해져 있었다.


제시는 지금까지 PCT를 하면서 생긴 유일한 친구였다. 은진이와 둘이서만 다니다 보니 친구를 만들 기회가 잘 없었다. 그리고 PCT에서는 일부로 같이 다니지 않는 이상 걷는 습관이 다르고 하루의 운행량이 달라 자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누군가를 깊이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었다. PCT를 하며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해 챙겨오지 않았는데 3일 째 되는 날 담배가 간절히 그리워졌다. 우리 근처에 텐트를 친 곰만큼이나 덩치 큰 사내가 담배를 피고 있었다.

‘아.. 하나만 얻어 필까? 참을까? 하나만 얻어 필까? 참을까?’

몸은 사내에게로 향하면서 고민하는 척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담배 한 까치만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그는 과자봉지만큼 큰 봉지에 가득한 담뱃잎과 담배를 말 수 있는 종이를 건냈다.

“담배 마는 법 알아요?”

“물론이죠.”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던 대학생 시절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비싼 담배값을 감당하지 못해 담배를 말아폈었다. 그곳에서의 습관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얇은 종이에 담뱃잎을 적당량 넣고 종이 끝에 침을 발라 접착력을 높이고 담뱃잎을 채운 종이를 말아 붙이면 됐다. 필터는 필요 없었다.
“전 호라고 해요.”
“전 제시에요.”
“사막 할 만해요?”
“네. 전 어릴 때부터 사막에서 자라서 사막이 더 좋아요. 전 작년에는 오레곤이랑 워싱턴을 끝냈는데 올해는 캘리포니아를 마치려구요.”
“회사가 휴가가 자유로운 편인가봐요?”
“네. 미국에서 대부분 이렇게까지는 휴가를 쓰기 어려운데 우리 회사는 자유로운 편이에요.”
“제시는 어떻게 PCT를 도전하게 된 거에요?”
“작년에 아내가 사고로 죽었어요. PCT를 한다고 해서 그녀가 잊혀지지는 않을 거란 걸 알아요. 하지만 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산다는 게 생각보다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잖아요. 그냥 그런 삶을 인정하고 즐기는 거죠. 그녀를 잊는게 내가 원한 방향은 아니지만 주어진 상황에 맞춰 적응해야 남은 사람이 살 수 있으니까요.”

PCT에 도전한 사람의 수만큼이나 PCT를 하는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누군가는 삶에 예기치 않은 큰 사건을 이겨내고자 도전을 하고 누군가는 나처럼 그냥 이 길을 걸어 보는 것 자체가 목표이기도 했고 누군가는 삶에 큰 전환점을 주고자 도전을 하기도 했다. 곰만큼이나 큰 덩치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못 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제시를 자주 만났다. 그는 밤새도록 걷고 아침이 되면 잠을 청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조금 일찍 걷기 시작한 것 같았다.
“제시, 또 보자.”
“응. 호, 씨유 온더 트레일!”

제시를 앞질렀다.


이제 서서히 해가 지고 있어 잠자리를 마련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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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들어서면 꾸준하게 오르막을 올라 능선을 걷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산 허리를 둘러서 갈 때는 잠자리를 마련할 만한 곳을 찾기가 힘이 들었다. 이번 산은 산 허리를 둘러 걷다 보니 한참을 걸었지만 텐트를 칠만한 곳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었다. 사막의 낮의 열기를 피해 밤에만 걷는 하이커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밤에 걸어본 적은 없었다. 거기에다 랜턴도 하나밖에 없고 더욱이 은진이가 얼마나 뒤에 있는지 몰라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기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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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산과 산이 겹치는 곳에 텐트를 칠만한 작은 공간이 있었다. 옆으로는 작은 물줄기가 흘러 고인 물이 썩어 있었지만 잘 피해서 치면 괜찮을 것 같았다. 텐트를 치고 물을 정수하고 있자니 은진이는 금세 도착했다.

“진아, 수고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다. 산이 시작되서 더 가도 잘 만한 곳이 안 나올 것 같네.”

“응. 그러자.”

저녁을 먹고 매트 위에 누웠다. 어느덧 드넓은 사막에 아주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흙바닥이 온전하게 느껴지는 얇은 매트 위에서 생활 한지도 한달의 시간이 다 되어갔다.

“진아 벌써 한달 다되어 가네.”

“시간 진짜 빠르다. 그치?”

“응. PCT는 할 만하나?”

“모르겠다. 그냥 하는 거지 뭐.”

“에게게. 맨날 인상 쓰고 말도 안하면서.”

“그거야. 보통 힘든 게 아니니까 그렇지.”

“그래. 대신에 그러면 뭐 때문에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이런거라도 최소한 얘기해주면 내가 은진이가 지금 이렇구나 생각할 수 있으니까 얘기해주면 좋을 거 같다.”

“그래. 노력 해볼게. 근데 감정이 한번 쳐지기 시작하면 그 말 하는 것도 잘 안되는 거 같다.”

“그래. 나도 니가 힘들어서 그렇구나 생각하려고 해도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나 때문에 화났나? 하면서 자꾸 자책하게 되는 거 같아서.”

“응. 앞으로는 그렇게 하도록 해볼게.”

은진이와의 대화 사이로 개구리 소리가 은은하게 치고 들어왔다. 이렇게 건조한 곳에서도 물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생명이 살고 있었다. 물은 지구 위의 모든 생명에게 고마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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