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독 하이킹
“진아, 그럼 내일 마을에서 보자. 가서 연락할게.”
PCT의 길은 고속도로 아래로 난 터널로 나 있었다. 터널을 지나기 전 고속도로의 휴게소로 빠져 맥도날드를 들려 빅맥을 먹고는 은진이는 다음 마을인 라이트 우드까지 히치를 해서 가고 싶다고 했다. 혼자 보내는게 마음에 걸렸지만 자주 싸우다 보니 거리를 두는 시간이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다!’
짧은 하루지만 은진이가 없는 첫번째 PCT가 시작되었다.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좋았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성격도 쾌활하다고 했다. PCT를 시작하고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매일을 푸른 하늘과 강한 햇살 아래 걷다가 처음으로 구름 가득 낀 하늘을 걸으니 시원하다는 생각보다는 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잠깐만 누울까?’
햄버거를 먹고는 은진이와 마트에서 커다란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셨던터라 걷기 시작한지 얼마지 않아 졸음이 쏟아져 그대로 길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잠을 청했다.
‘아.. 많이 걸어놔야 하는데…’
내일은 은진이의 숙소 체크아웃 시간이 있을터라 마냥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 최대한 마을에 빨리 들어가야했다. 30분을 채 자지 못하고 심리적 부담과 쏟아지는 잠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350 mile, 560km.’
PCT 하이커가 작은 돌들로 만들어놓은 기념비를 지났다. 꽤 많이 걸어왔지만 아직 사막의 반을 지나지 못했으니 참 징글징글 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도를 보니 25km를 가면 은진이가 있을 라이트 우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커다란 산 하나를 오르고 산의 능선을 따라 계속 걸으면 되는 것 같았다. 목표는 15Km를 걷고 내일 오전에 10km를 걸어 정오가 되기 전 마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오르막이었지만 시속은 4km가 조금 넘게 나왔다. 처음에는 휴식 시간을 포함해서 평속 3km가 채 나오지 않았는데 3주 사이에 큰 발전이 있었다. 쉬는 것도 1시간에 한번 쉬다가 1시간 15분을 걸어 5Km를 걷고 15분을 쉬는 것을 하루 종일 반복하면 30km를 걷는 것에는 큰 부담이 없었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길 옆에 작은 공간에 텐트를 친 하이커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도 오늘 맥도날드를 들렀을 것이고 문명의 맛을 보고 일찍 끝내 휴식을 취하고 싶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 없이 오르막을 2시간 남짓 걸어 정상에 닿으니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고 안개가 산을 뒤덮기 시작했다. 바람에 몸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목표치보다 5km를 덜 걸었지만 내일 조금 일찍 일어나 걷기로 하고 자리를 잡기로 했다. 정상 부근에 텐트를 치기에 좋은 곳이 있었고 이미 텐트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텐트를 치며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텐트에서 동양인 아저씨가 나와 인사를 건냈다. 그의 인상이 푸근한 한국의 아저씨같이 보여 물어보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저는 대만 사람인데 미국에 와서 산지 20년이 다되어 가네요.”
“아~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반갑습니다.”
“네. 반가워요. PCT 하면서 아픈 적은 없어요?”
“시작하고 첫 주에 무릎이 안좋아서 한 5일간 쉬었는데 그 이후로는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저는 무릎이 안좋아서 2주동안 쉬고 오늘 복귀해서 걸었는데 더 걸어봐야 알 것 같아요.”
“PCT 하면서 아픈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바람은 더욱 거세져 아저씨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게 힘들어졌다.
“아저씨 바람때문에 안되겠어요. 이만 들어 가 볼게요.”
“그래요. 바람이 너무 쎄네요. 잘자요!”
저녁은 자연스럽게 텐트 안에서 해먹어야 했다. 뭔가 텐트 안에서 밥을 해먹어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부터 내심 코펠을 쏟을까 불안했는데 결국엔 사고로 번져버렸다.
“아~이 씨!”
라면을 끓이는 동안 양반다리를 하느라 접고 있던 다리가 저려 편다는 것이 그만 힘이 풀려 다리를 통제를 하지 못하고 스토브를 차버렸다. 불이 켜진채 스토브가 엎어져 텐트의 모기장이 녹아 내리고 바닥은 라면과 밥으로 뒤덮여 버렸다.
‘이런 일도 꼭 은진이가 없으니까 생기네.’
밤새 텐트 안에 진동하는 라면 냄새를 안고 잠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