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한 달 동안 했던 깁스를 풀었다. 한 달을 동일한 자세로 팔꿈치를 고정해놨으니 팔이 잘 펴지지 않는다. 딸이 팔을 펴고 접는 데 통증을 느낀다. 나는 깁스를 풀면 당연히 팔이 바로 펴질지 알았는데 그건 큰 오산이었다.
의사가 그랬다. 근육과 관절을 고정해놓고 움직이지 않으니 그쪽 근육과 관절이 많이 죽어있을 거라고. 동일 자세로 고정해놓으니 근육과 관절이 거기에 적응해서 계속 안 움직이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팔이 잘 굽히고 펴지려면 계속 펴고 굽히는 동작을 하라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보다 더 운동의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었다. 근육과 관절은 계속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움직이려 하고, 쓰지 않으면 계속 죽어간다는 원리이다.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안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세상의 이치이고 노화의 원리이다. 하지만 나이 듦을 더디게 하는 건 인간 고유의 몫이다. 몸을 쓰고 움직여서 내 몸이 계속 움직이고 싶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방치해서 계속 퇴화되는 것을 방관만 할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물체가 자신의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 관성의 법칙은 우리 몸에도 적용된다. 아니나 다를까 사전을 찾아보니 관성은 '몸에 오래 붙은 버릇'이라는 뜻도 있다.
1. 움직이던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멈춰 있던 물체는 그대로 있으려고 하는 성질
2. 몸에 오래 붙은 버릇
-보리 국어사전-
사전에서 예로 들은 문장은 더 재미있다. "관성에 따라 무심코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볐다." 요즘 나의 관성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 묵상하게 된다.
날씨가 추워진 그새를 못 참고 움츠려 들고 해이해진 나의 몸뚱이를 본다. 아이들을 보내자마자 추위를 뚫고 한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걸었다. 흠뻑 흘린 땀이 근육을 살아나게 한다.
이게 몸에만 해당하는 원리일까 싶다.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늘 깨어있으면 내 정신은 깨어남을 추구할 것이고, 늘 죽어있으면 내 영혼은 죽음을 향해 갈 것이다.
얼마만의 자연 사진인가. 아이들 사진도, 자연 사진도 찍은 지 오래다. 사진을 찍으며 순간을 기억 속에 남기느니, 현실에 집중하고 싶어서 일부러 카메라를 멀리 하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늘 깨어있길 원하는 찰나를 오랜만에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마더와이즈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많이 보라고 했다. 스마트폰 대신 하늘을, 꽃을, 바람을 보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내 몸도 본다. 그리고 깨어난 근육을 느낀다. 살아난 근육만큼 살아날 정신을 위해 성경을 편다.
깨어나라, 내 영혼아!
깨어나라, 하프야, 거문고야!
깨어나라, 너 잠꾸러기 태양아!
Wake, soul! Wake, lute! Wake up, you sleepyhaed sun!
-시편 108편 2절,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