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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n 11. 2020

웃음과 흰머리

세월이 새겨진 표정

큰 아들이 무뚝뚝한 나의 입꼬리를 하루에도 여러 번 손으로 올려준다. 웃으라는 표현이다.


언제부터 웃지 못하게 된 걸까? 언제부터 웃음은 사라지고 심각함, 삶에 찌든 표정에 내 인상에 아로새겨져 버렸을까? '아이 넷을 낳고 살다가'라고 말하기엔 우리 동네 다른 아이 넷 엄마 E씨, 아이 다섯 엄마, K 언니의 세상 환한 표정이 떠올라 관두기로 한다. '아이 넷을 낳고 살다가'라고 말하기엔 아무 잘못도 없이 축복받아 태어난 아이들을 죄인 만드는 비겁한 발언이라 안 하기로 한다. 


어제 책방에서 얼굴이 참 편안한 한 분을 만났다. 나보다 훨씬 연배도 있어 보였다. 그분께 내가 앞쪽에 훤히 보이는 흰머리 고민을 털어놓자 당신은 흰머리가 한 번도 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흰머리가 정말 스트레스성이구나. 그분의 표정과 검은 머리, 나의 굳은 표정과 흰머리는 연관성이 있음에 틀림없다.


"사람들이 꼭 자기 몸처럼 생겼다"라던 책의 한 글귀를 다시 들춰본다. 입꼬리를 의도적으로 올려보자. 억지로라도 웃어보자. 그게 염색보다 흰머리 가속화를 더디게 할 지름길일 수 있다. 


2020.6.11

새벽에 쓰다



어느 날 카페에서, 사람들이 꼭 자기 몸처럼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걸음걸이, 서 있는 자세, 표정, 몸의 곡선, 목 어깨 골반 무릎을 통과하는 몸의 정렬 상태, 살집, 근육의 분포, 체취, 머리카락의 색과 굵기, 눈빛, 낯빛, 몸의 기운까지! 여기까지가 그 사람이다. 몸을 둘러싼 에너지가 곧 그의 성정이나 형질을 반영한다. 겉만 봐서는 사람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표면이 곧 심연이다"라고 한 니체의 의견에 동의한다. (p.10), 토머스 린치 외, <살갗 아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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