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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n 19. 2020

대머리가 아니라 흰머리라서 아직은 다행이야

-노화는 감정이다- 정희진의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를 읽다

늙어감에 분이 난다.


며칠 전 딸아이가 흰머리가 희끗희끗 난 나더러 할머니라고 놀렸다. 그런 딸에게 평생 할머니 안 될 사람처럼 심하게 화를 내고 말았다. 늙기 싫다. 몸부림치고 싶다. 늙어감을 붙잡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다.


머릿결이 참 단정하신 50대 이웃님께서 나이듦에 대한 글을 쓰셨길래 여쭈었다. 늙어감에 대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나는 노화에 대한 심란한 마음도 책으로 어찌해보려 했다. 그런데 책 추천은 안 해주시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위안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답이 왔다. 그러면서 나보다 한참은 젊은 시절, 아주 오래전부터 흰머리가 났다고 고백하셨다. "원망하고 불평해봤자 검은 머리는 한 가닥도 안 난다"라고도 말씀해주었다. "좋은 염색약 사서 드라마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염색"하는 당신의 일상을 공유해주었다. 그분의 어여쁜 검은 머리칼만 봐서 그런지 이 뜻밖의 커밍아웃은 큰 위로를 넘어 반갑기까지 했다. 새 염색약을 테스트해보고 추천해주신다고도 했다. 감사하다.




며칠 전 "노화는 감정이다."라는 글을 정희진의 책에서 읽었다. 그렇다면 늙어감에 대한 속상한 감정도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게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말은 진정 빈말이 아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노령의 개념이 다르다. 삶은 누구에게나 질병과 피로와 나이 듦의 시간이다. 그래서 나이듦은 느낌이다. 타인의 시선을 내재화한 자기 감정인 것이다.(p.83) 정희진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타인의 시선을 내재화한 자기 감정"이라... 행간을 읽고 또 읽는다.


이제 좋은 염색약을 알아보려 한다. 나도 드라마나 음악 틀어 놓고 염색해야지. 앞머리 부분 한쪽에 집중적으로 나는 흰머리라서 이 한 부분을 염색하러 미용실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돈도 들고 시간도 든다. 무엇보다 나는 머릿결 상하게 하는 전체 염색이 싫다. 전체 염색을 끊고 파마를 일 년에 한 번으로 줄이니 푸석했던 머릿결이 많이 나아졌다.  


흰머리 부분 염색을 시작할 생각을 하다 어제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 대머리가 아니라 다행이야. 머리가 빠지면 더 골치 아프겠지. 흰머리는 염색으로 해결할 수 있잖아. 대머리라서 머리를 심는 것보다는 나아.'


머리숱이 많이 빠져 대머리가 되기 시작하면 또 다른 고차원적인 고민이 생길지 모르지만 아직은 대머리가 아니라 흰머리만 나와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렇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 글이 있어 참 다행이다.


오늘 새벽 예배 중 만난 시편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편 37편 8절-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편 37편 11절-


노화도 감정, 그러니까 내가 사실을 왜곡해서 보는 것뿐이니,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나이듦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자, 흰머리가 났다. 울고만 있을 것인가? 염색을 하자!


덧: 머리가 빠지시는 분들, 제 글을 읽고 속상하지 마시길. 행복과 고민은 상대적이니까요^^ 저는 머리는 안 빠지만 마음은 아주 궁핍한 사람이랍니다^^


2020.6.19

노라, 새벽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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