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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n 18. 2020

사랑을 회복하고픈 마음

<딸은 좋다> 채인선 글/김은정 그림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딸과 데이트하기로 한 날인데 사태 돌아가는 걸 보니 틀렸다. 대전 지역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고 내가 사는 동네에도 확진자가 나타났다. 동선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채.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동생이 자꾸 집에 있고 이틀씩만 학교에 가는 오빠들도 거의 날마다 집에 있으니 딸도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다. 약속했다. 오빠들이 동시에 학교에 가는 유일한 날, 목요일에 유치원을 빠지고 단 둘이 데이트를 해줄 테니 월, 화, 수, 금 등원 잘하기로.


오빠들이 왜 사랑이랑만 엄마는 데이트하냐고 반발해서 모두에게 공평한 '엄마와 단 둘이 데이트' 날을 정했다. 수요일에는 둘째, 목요일에는 셋째, 금요일에는 첫째와 데이트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이것도 수, 목, 금에 막둥이가 순순히 어린이집에 가줘야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그런데 "엄마 너무 사랑해서, 엄마 너무 예뻐서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막둥이의 말을 들으면 나는 마음이 한없이 무너져 내린다.


아들 셋에 셋째 딸 하나. 사람들이 양념 딸이라며 얼마나 예쁘겠냐고 한다. 그런데 막둥이를 낳은 이후로는 나의 사랑이 막둥이에게 쏠려버렸다. 사람 마음의 에너지에도 한계가 있나 보다. 아이들 각자는 자기만 봐주라 하는데 네 명 모두에게 골고루 마음을 쏟기가 힘에 부칠 때가 많다. 덕분에 나는 네 명 각자의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나의 사랑은 각 아이들 사랑의 갈급함을 채워주기엔 한없이 모자라다.


딸과의 관계,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딸은 좋다>라는 그림책을 여러 번 들여다본다. '아, 이래서 딸이 좋구나, 그런 거로구나. 그랬었지.' 책장을 넘기며 음미한다. 채인선의 행간의 글을 읽고 또 읽는다. 이런 내 모습이 서글퍼 보이기도 하다. 가족과 타인과 관계함에 있어 항상 서투르고 늘 실수하는 나. 사랑도 결국 사람이 아닌 책으로 배워야만 하는 나. 나는 이런 내가 안쓰럽다.


오늘 딸과 단 둘이 동네 책방 두 곳 마실도 가고, 오붓하게 국수대장, 딸이 좋아하는 우동과 메밀국수도 사 먹으려고 했는데 틀린 것 같아 속상하다. 단 둘이 시간을 보내며 사랑도 마음도 회복하려 했는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감염병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재앙 속에 한낱 무력한 인간일 뿐이다.


일어나서 이 사실을 알면 더 속상해할 딸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확진자 동선 파악은 언제 나오려나. 오늘 네 명 다 데리고 있어야 하나.


대구가 터지고 수도권이 시끄러울 때 대전은 조용하니 내가 그곳에 살지 않은 게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소 안심했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이기적인 마음이다. 이제 인류는 너무나 가까이 연결돼 있어서 안전한 곳 하나 없다.


2020.6.18

딸과의 사랑을 회복하고픈 날,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도 어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노라, 새벽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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