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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n 14. 2020

욕심이 살갗 아래

삶의 리듬이 필요한 시간

6월이 되니 마음이 급해지고 욕심이 났다. 곧 연말이네?! 올해 무언가 꼭 성취해야겠어! 날마다 글을 쓰고 올해 안에는 출간해야겠어, 이런 생각이 지배했다.


신명 나게 재미있다. 읽고 쓰는 삶. 가슴 설레어 2시 반에 깬 적도 많다. 3시 반 정도에 일어나야 충분한 잠을 자는 건데 수면 시간이 다소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잠은 줄었고 오른쪽 손목이 시큰시큰 아팠다. 요즘 근력 운동을 게을리했던 탓도 있으리라. 나는 이런 나의 상태를 열정이라고 불렀다.


손목이 아파 며칠 한의원에 다녔다. 한의원 선생님은 나의 상태를 쉼 없는 노동의 결과라고 명명했다.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노동을 했다고? 맞다. 강약 조절을 하지 못했다. 한 몇 주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렸다. 목적을 두니 욕심이 살갗 아래 파고 들어와 손목의 근육을 시큰거리게 했다.


침을 맞으며 한의원 원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리듬을 가지고, 손목을 쉬면서 하란다. 출간에 목적을 두지 말고 남의 인정을 구하지 말란다.


뚜렷한 목적과 남의 인정은 앞을 보고 나아가는 데 필수 요소 아니었나? 무언가를성취하는 데 목적과 남의 인정은 꼭 필요한 자극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하며 나에게 쉬면서 하라고 했다.  


노동에는 리듬이 필요하고, 예술은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리듬이 필요 없다. 예술은 목적이 없기 때문에 무경계로 몰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노동에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쉬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오니 꼭 쉬면서 해야 한다. -2020.6.13, 어떤 한의원 원장님의 말


몸을 다루는 분이라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도 간파하고 계셨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지난 며칠 동안의 나를 되돌아본다. 읽고 쓰는 삶에 빠져 있었지만 무리했다. 나는 예술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욕심이 들어가니 그동안 노동이 됐나 보다. 그래서 손목 근육에 무리가 왔고.  


목적을 두는 삶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옆에서 사악하게 웃고 있는 노림수를 생각한다. 글 쓰는 자체의 즐거움보다는 목적에 꽂혀 있던 마음가짐을 돌아본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한다. 왜 쓰는가. 무엇을 위해 쓰는가. 목적 때문에 무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명 나는 일을 할 때, 노림수를 안 둬야 물아일체를 경험한다. 노림수를 두면 예술이 아니다. 그건 노동이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면 노동, 타인의 인정과 무관할 때 예술이다.  -2020.6.13, 어떤 한의원 원장님의 말

무슨 책을 읽으셨길래 이렇게 주옥같은 말씀만 하시냐고 물으니 그냥 당신이 느낀 거란다. 책에서 나온 게 아니고. 그의 지혜에 감탄한다.


원장님이 한 마디 또 보탠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쓴 릭 워렌 어떻게 된 줄 아냐고? 그 교회 결국 망했다고. 그러니 목적을 두지 말고 즐기란다.


봄에 만났던 김용택 시인의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시인이 되려고 된 게 아니에요. 너무 재미있는 걸 매일 하다 보니 어느 날 내가 시인이 돼 있더라고요."  


몸을 고치러 갔다가 마음까지 돌보고 왔다.


나에게 멈춤, 삶의 리듬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런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오늘은 오랜만에 푹 자고 깼다.   


행복은 사건에 달려 있지 않고 마음의 밀물과 썰물에 달려 있다. (p.81)

젊은 시절에 위대한 성취를 꿈꾸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삶은 너무나 길어 보이고, 너무도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삶에 필요한, 삶이 가져야만 하는 그 모든 간격 - 열망과 열망, 행동과 행동 사이의 간격, 잠을 위해 멈추는 시간들처럼 피할 수 없는 멈춤들 - 을 모르기 때문이다.
 (p.83)<천천히, 스미는> 중

20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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