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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n 15. 2020

줄로 재어 준 구역

시편의 고백들, 아름다움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하기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는 신앙을 지키는 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이 그렇다.


일이 주일 동안 또 세상 책들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게 기억나지 않는 때가 있다.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나니냐라고 했던 김영하의 말이 정확하다. 나에게서 책들이, 문장들이, 글들이 잠시 머물렀다 다시 흘러간다. 내 안에서 영원할 것처럼 감탄했던 글들도 결국 그저 흘러갈 뿐이다.


그러면 나는 성경을 찾는다. 책 위의 책, 모든 글 위의 글, 모든 책의 모태.


새벽 예배가 시작할 무렵 5시 반이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읽고 있던 책들, 메리 올리버의 아름다운 문장들, 오사다 히로시의 허를 찌르는 사유, 정희진의 사태를 바라보는 통찰력에 깊이 매료되어 있던 새벽 시간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마음속에서 수많은 갈등을 한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이 책들을 더 읽을 것인가, 다 놓고 새벽예배를 드릴 것인가.


한 이 주 동안은 이 싸움에서 졌다. 세상 것들에 내 시간과 자리를 내주었다.


오늘 다시 성경으로, 예배로 돌아왔다. 오늘은 시편이다. 시편은 걱정, 근심, 아픔, 두려움, 등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찬양이다. 솔직한 고백을 담은 책이니만큼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묘사한다.


성경의 한 줄이 그 어떤 책 보다 울림이 크다. 오늘 나를 사로잡은 시편의 구절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The boundary lines have fallen for me in pleasant places; surely I have a delightful inheritance.
-시편 16편 6절 말씀-


줄로 재어 준 구역이라니. 숱하게도 물었었다. 왜 그릇도 안 되는 나에게, 성정이 이렇게도 모난 나에게 네 명이나 주셨나이까.


오늘 그 답이 들린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이다. 나에게 딱 맞춤형인 인생을 주셨다. 그래서 이 구역, 나의 공간은 아름답다.


이 세상에 '만약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걱정, 모두 내 상황을 그대로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나오는 마음의 뒤틀림 들이다. 실수하지 않는 하나님, 오차가 없으신 하나님, 나만큼의 구역을 줄로 재어주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요즘 흰머리가 꽤 신경이 쓰였다. 보기 흉했다. 늙어가는 게 싫었다. 시편의 '줄로 재어 준 구역'을 읽고 내 나이에 만족하고 감사하기로 마음 먹는다. 내 인생도 줄로 재어 준만큼의 나이가 있을 테니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감사는 삶을 살기로 한다. 잘 되지는 않겠지만 노력하기로.



20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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