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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n 13. 2020

여름밤, 나의 구석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을 읽다

여름이 되니 거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온 방문을 열어 놓고 잔다. 여름밤의 집안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적정한 온도는 깊은 수면의 필수 요건이다. 아이들이 잘 자야 다음 날 엄마인 내가 아이들을 돌보기가 수월하다. 아이들의 수면의 질이 엄마의 양육 상황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에 여름날에 거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온 방문을 열어놓고 자는 것은 삶의 필수 요소이다.


여름날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만의 방' 역할을 하던 부엌 식탁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없다. 불빛이 방에 새어 들어가서 아이들이 깨면 실로 낭패다. 나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아이들을 자칫 잘못하여 깨우면 나만의 새벽 시간은 통째로 사라진다. 다시 재워달라고 방에서 뛰쳐나오는 아이들의 부름에 응답해서 방으로 소환된다. 참으로 원치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나만의 방'을 집의 맨 끝방으로 옮겼다. 여름 동안 한시적인 대책이다. 큰 아이 책상을 나만의 책상을 삼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양말을 단디 신는다. 열린 문틈 사이로 나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안 되니 양말은 첫 번째 필수 요소다. 나의 구석에 어제 산 꽃병도 옮겨 놓는다. 매일 새벽 물도 마셔야 하니 물병도 가져다 놓는다. 가족들이 깰 세라 두 방문을 살짝 닫고 커피도 내린다. 커피가 다 내려지면 다시 집안 온도를 맞춰야 해서 방문들을 열어놓고 나는 살금살금 나의 구석으로 조심스레 걸어간다.


책상에 아이의 교과서가 보인다. 나의 구석은 하나 보잘것없이 초라하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이 있는 한 나의 마음만은 더없이 충만하다.


나의 구석은 이 열띤 여름밤 동안 어떤 이야기들을 빚어낼까? 여름의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나의 열정만큼은 식을 길이 없다. 오늘도 책 숲을 조용히 거닐었다. 아무도 깨지 않도록.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 그때에 그 기회가 도래하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이 종종 스스로 내던졌던 육체를 걸칠 것입니다." (p.148)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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