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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n 22. 2020

심호흡이 필요한 시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오사다 히로시의 <심호흡의 필요>

지난 주에 산 꽃이 생명을 다해간다. 시들어가는 장미를 꽃병에서 꺼냈다. 이제는 물을 그만 갈아주고 꽃을 말릴 시간. 지는 꽃을 보며 생명의 한계, 죽음, 그리고 나의 과거를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속 이반은 죽어가며 처절한 고독을 느낀다. "이런 고독 속에서 이반 일리치는 그저 과거의 추억만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p.106) 이반의 추억은 아득히 먼 옛날, 어린 시절로 거슬러올라가 거기에 머무른다. 과거를 회상하며 "지금 현재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 생명이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삶 속에 선량함도 훨씬 더 많았고 삶 그 자체도 훨씬 더 풍요로웠다."라고 한다. 그러나 죽음에 가까울수록 인생의 환한 빛의 속도는 점점 어두워져만 가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고 고백한다.


죽음은 내 앞에 얼마나 가까이 놓여 있을까? 죽음이 목전일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이반처럼 기억은 자꾸만 어린 시절로 나를 데려다 놓을까?


나에게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은 항상 아픔이다. 빨리 커서 지긋지긋한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절만의 아득한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친구들과 깔깔깔 웃고 떠들며 고무줄 너머 다리를 하늘 끝까지 높이 들었던 기억, 해가 뉘엿뉘엿 지도록 놀며 "밥 먹어라"라는 엄마들의 외침을 들어야만 하나 둘 집에 갔던 시절, 친구들과 시장에 삼삼오오 가서 떡볶이와 순대를 사 먹던 나날들. 언니와 머리를 쥐 뜯으며 싸웠던 시절.


시들어가는 장미를 바라보며 아팠지만 순수했던 네버랜드의 시절로 되돌아가 본다. 어른이 되어 나는 무엇을 잃었을까? 나의 소중한 네 아이들에게 영롱히 반짝이고 있는 순수한 동심을 나는 지켜주고 있는가?  


바삐 흘러가는 인생 속에서, 코로나가 덮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며 심호흡을 크게 가다듬어 본다.


옛날이 좋았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죠. (...)
우리는 오늘 행복한가요? (p.95) - 이반 씨, 오사다 히로시의 <심호흡의 필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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