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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n 23. 2020

책갈피 하나에서 시작된 세계

오사다 히로시, <심호흡의 필요>, <아이는 웃는다>, <첫 번째 질문>

"<위대한 게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나가사와의 말이다.


처음 <심호흡의 필요>를 마주친 건 다름 아닌 책갈피 속 문구다. "가끔 안톤 파블로비치의 짧은 이야기를 읽는다."로 시작하는 구절. 이 문구를 읽자마자 나는 생각했다. 체호프를 가끔 읽을 정도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이 작가의 글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겠다고.

동네책방으로 곧장 달려가 책갈피를 굿즈로 주는 오사다 히로시의 산문집, <심호흡의 필요>를 손에 넣었다. 책갈피가 갖고 싶어서 책을 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이 시중에 나온 건 알고 있었지만 오사다 히로시의 시 그림책은 워낙 뛰어났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라면 시로 이미 충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내가 소설가의 산문보다 소설을 더 사랑하고 신뢰하는 이유다. 소설가라면 소설로 이미 모든 이야기를 한다고 믿는다. 김금희 소설가의 산문이 요즘 인기가 많던데 나는 이상하게 그녀의 산문에 끌리지 않는다. 이유라면 그녀의 <경애의 마음>이나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같은 소설집을 사랑하기에 그녀의 산문을 사지 않는다. 이미 두 작품집을 비롯 다른 소설들에서 김금희 소설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충분히 내가 듣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이다.  


하지만 오사다 히로시의 <심호흡의 필요>는 이런 나의 편견을 깼다. <심호흡의 필요>는 그의 시 그림책과 꼭 함께 읽어야 할 산문집이다. 이 작품은 '길 가의 돌 문학상'을 수상했다는데 상의 이름만큼의 세계가 그의 글에 녹아있다. 그의 산문집, <심호흡의 필요>는 우리가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아름다움, 자연, 나무, 꽃,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의 시 전반에 녹아 있는 사상을 그의 산문에서 엿볼 수 있다. 함께 읽으면 감상의 기쁨이 배가 된다. 이세 히데코의 그림과 함께라면 더더욱.


그의 그림책을 길가의 돌을 무심히 바라보듯 다시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이는 웃는다>와 <첫 번째 질문>은 오사다의 명시에 이세 히데코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이다.


다음은 오사다 히로시의 그림책, <아이는 웃는다>의 문장이다.


왜 어른이 되면 사람은 묻지 않는 걸까? 이를테면 행복을 잃었다 해도 인생은 여전히 웃음 짓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그의 또 다른 그림책, <첫 번째 질문>을 펴 본다.


나에게,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삶에 대한 질문들을 툭툭 던짐으로써 길가에 멈추어 서서 자연과 더불어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하기 바랐던 오사다 히로시, 행복과 웃음, 자연과 동심에 대한 시를 노래했던 그는 <심호흡의 필요>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인생이란 과연 고뇌할 가치가 있는 걸까,라고 했던 체호프. 중요한 건,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아니냐인 것이다. 서두르지 않을 것. 손을 써서 일할 것. 그리고 하루의 즐거움을, 한 그루 자신의 나무와 함께할 것. - 오사다 히로시, <심호흡의 필요>


오사다 히로시는 생전 안톤 체호프를 즐겨 읽었다 한다. 체호프의 작품 세계가 오사다 히로시의 시와 서에 오롯이 녹아있는 부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체호프와 히로시의 작품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새로 다시 하고 싶다.


이 책을 번역한 박성민 번역가와 SNS에서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 책갈피를 만들 때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만들 땐 좀 없어 보이는 것 같아 걱정했다고 한다. 전부 손으로 접고 구멍 뚫고 하면서도 내가 뭐하는지 했다고. 그런데 이 책갈피를 내가 맘에 들어해서 기쁘다고도 했다. 


새벽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누가 읽을지도 모르겠고 책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글들을 새벽의 불을 밝히고 쓰면서 나 지금 허튼짓하는 거 아냐? 하지만 조심스럽게 믿어본다. 한 사람이 허튼짓이라 생각하며 만들었던 조그만 책갈피가 나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와 오사다의 산문을 만난 것처럼, 나도 내가 뭐하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쓰는 이 글들도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가닿겠지. 


출간됐으나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산문이 많던데 오사다 히로시의 산문을 더 만나고 싶다. 내 마음에 끌렸던 책갈피 하나에서 비롯된 책 씨앗 이야기가 오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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