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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n 25. 2020

야호!

<야호! 비다>, <야호, 비 온다>, <심호흡의 필요> 그리고 시편

비가 오면 습해서 짜증이 났다. 눈이 오면 아이들 데리고 눈 놀이하러 나가야 해서 힘들었다. 눈이 녹으면 땅이 질펀해져서 싫었다. 더우면 불쾌지수가 높아져서 아이들이 옆에만 와도 짜증 났다. 추우면 빨리 따뜻한 봄이 오길 바랐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어떤 환경에서 불평 거리를 잘도 찾아내는. 삶에 대한 염세적인 태도, 불평하는 마음은 내 표정과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불가항력적이었다. 그런 태도를 바꾸는 게 사십 평생 쉽지 않았다.


이제는 비가 오면 비가 온 대로 좋다. 눈이 오면 눈 구경 실컷 해서 좋다. 그렇잖아도 지구 온난화 때문에 잘 오지도 않는 눈이니.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 밖에 못 나가니 집에 있을 수 있어 편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놀이터 죽순이 기본 네 시간. 극한의 날씨는 놀이터 보초 서기 면제받는 날이라 때론 희소식이다.


아침에 비가 와서 셋째 유치원 버스 태우기 전에 20분 정도 일찍 셋째와 넷째를 데리고 나갔다. 나가서 지렁이도 보고 달팽이도 보자고 했다. 손으로 지렁이를 만질 때마다 지렁이가 꿈틀거리니 아이들은 신났다. 발을 동동 구르며 빗 속에서 첨벙첨벙 신나라 한다. 비 온 뒤 나무에서 떨어진 살구의 향을 맡으며 살구의 촉감이 뽀송뽀송하다고 좋단다. 공벌레를 여러 마리 잡으며 "진짜 공 같다." 소리 지르며 제대로 신이 났다. 비 오는 날만 만끽할 수 있는 자연들을 함께 느끼며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고 왔다. 2월 말 코로나가 터지고 최초로 네 아이 모두 등원한 날이다. 얼마만의 혼자만의 오전인가.


혼자 있어 감사하다. 비가 와서 좋다. 야호, 비가 온다! 신이 주신 특별한 날, 비 오는 날, 비가 와서 감사하다. 오늘 큰 아이 깁스를 풀러 가는데 그만 하길 참 다행이다. 신랑이 며칠 전 오른발에 부목을 대고 발을 절뚝거리는데 더 크게 다치지 않아 감사하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어려서부터 배웠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해 성인이 다 돼서 책을 펼치며 인생의 태도를 다시 배우고 있다. 책과 함께 내 영혼에도 촉촉이 빗물이 스민다.

가만히 계속, 비 오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마음의 양동이에 빗물이 고이는 것 같다. 옛날, 그리스 철학자가 말했다지. 영혼은 말이지, 양동이에 가득 담긴 빗물이랑 아주 비슷해 (p.75) -오사다 히로시, 심호흡의 필요-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시편 65편 9-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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