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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l 27. 2020

스마트폰은 이제 신체의 일부인가?

몸과 기억의 확장이 된 스마트폰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정희진의 스마트폰에 대한 정의다.


손 안의 컴퓨터, 스마트폰은 몸의 확장이다. 기억은 점차 몸에서 기계로 이전되고 있다. 인간의 몸은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가? 디지털 성폭력은 단지 부작용일까...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다른 소비만으로도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열린다.
(2020년 7월 21일 자 한겨레 오피니언, 정희진의 융합 2)


몸의 확장이라니. 그러니까 스마트폰이 장기 같은, 손과 발 같은 신체의 일부라는 말이다. 그럴 법도 한 게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스마트폰과 손이 딱 붙어있다. 놀이터에서 아이는 엄마에게 말을 거는데 엄마는 스마트폰 속 화면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없다면 거짓이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밥이나 커피를 사이에 두고 각자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이 이젠 낯설지 않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다. 그러려면 왜 만났나.) 공원에 휴식을 취하러 온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즐거웠으면 좋겠다. 내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문제는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리고 나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자책이 되고 후회가 된다는 거다. 애들이 없을 때만 사용하려고 나름 애를 쓰는데도 뭐가 그리 급한지 로켓 배송으로 다음 날 새벽에 바로 받고 싶은 식품이나 생필품은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바로 쿠팡에 접속해야 한다. 자유 시간에 스마트폰에 온 마음을 뺏기고 나면 손에서 스마트폰을 쉬이 놓지 못한다. 그러고 나면 의미 없이 한두 시간이 훌쩍 가버린 때도 많다. 분명 스마트폰은 몸의 일부가 돼버렸다. 씁쓸하다. 강인한 절제력과 의지력이 아니고서야 스마트폰을 신체에서 분리하기란 이제 어려운 일이 된 걸까?  


스마트폰으로 몸이 확장되는 것을 거부하는, 휴대전화 미 사용자인 정희진을 존경한다. 오늘, 또 다짐한다. 스마트폰을 멀리 하자. 스마트폰을 내 신체에서 떼 내자. 니가 내 신체의 일부라니. 섬뜩하다, 얘! 저리 가!!

2020년 7월 21일 자 한겨레 오피니언, 정희진의 융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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