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진실

-정은의 <산책을 듣는 시간>을 읽다-

by 마음은 줄리어드

엄마들 반 모임이 있었는데 갈까 말까 수십 번을 고민하다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운동 후 집에 돌아와 자판 앞에 앉았다. 책 한 권을 내지 않았어도 내가 나 자신을 작가라고 명명한 이상, 작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모임에 가서 맛있는 밥을 먹고 웃고 즐기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쓸 수는 없다. 이 작가, 저 작가, 북토크를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많은 배움을 주긴 할 테지만 어떤 면에서는 의미가 없다. 나의 시야를 넓혀주고 그들의 조언을 가슴에 새길지언정, 내가 써 내려가지 않는 이상 그만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듣는 시간>에서 정은은 "시인은 직업보단 태도에 가깝겠다"라고 했다. 그렇다. 내가 나의 직업을 작가라고 규정하면 나는 작가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아무도 나를 작가라 하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작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까이할 것과 멀리 할 것들을 정리해 본다.



가까이할 것: 내 삶 그 자체인 아이들, 운동, 특히 스쿼트와 런지, 호기심, 책, 지적 욕구, 익숙하지 않아 낯설어 자꾸 멀리 하게 되는 브런치에 연재, 읽다 만 책들을 완독하고 글로 씀으로써 하나씩 떠나보낼 것, 써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매일 스스로에게 부여할 것, 네 명이 들볶고 싸우는 기나긴 오후가 지긋지긋하고 도망가고 싶다고 느낄지라도 항상 감사함을 생각하고 떠올릴 것, 웃음이 나오지 않더라도 웃어보려고 노력할 것, 글이 삶이 되고 삶이 글이 되는 삶을 항상 염두에 둘 것



멀리 할 것: 카톡, 스마트폰, 우울한 감정, 쇼핑욕



며칠째 인터넷에서 아이보리색 하프 패딩을 째려보고 있다. 글을 쓰면 예쁘게 입고 꾸미고 다닐 시간도 없는 데다가 아이들 방학이 시작하는데 이건 사서 뭐할까 허벅지를 찔러 자제하고 또 자제해본다.


한 해가 곧 넘어가건 안 넘어가건 나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남은 12월의 14일 동안 날마다 거르지 않고 쓰느냐 안 쓰느냐 그것만이 내가 집중할 것. 그리고 딸아이의 방학이 내일부터 시작되는데 힘들어서 미친 듯이 울고 싶어도 억지로라도 웃음을 잃지 않을 것, 삶으로 더 치열하게 들어갈 것, 아무리 써도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않으면 작가로서 절대적으로 실패한 삶이라는 것. 아이들에게는 웃음을 잃지 않되 혼자 있을 땐 무조건 쓰면서 어두운 내면을 토해낼 것.


신은 나에게 네 아이라는 은총을 주셨다. 아이들로 인해 이미 많은 인간관계에 노출되면서 관계 맺기에 피곤해진 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책과 글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불완전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늘 불평이 앞선다. 신의 은총과 나의 어리석음은 어찌할 수 없다지만 웃음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자. 이 세 가지 진실에 집중하는 나날들을 보내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한다.


세 가지 진실한 것이 있다. 신, 인간의 어리석음, 그리고 웃음이 그것이다. 앞의 두 가지는 우리의 이해 너머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오브리 메넌의 <라마야나>라는 힌두 서사시의 한 구절 (p.115)
-파커 파머,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시인 임명장을 받아 들고 그때부터 나는 시인이 되었다. 이제 직업이 생겼다. 물론 시인은 직업보단 태도에 가깝겠지만. (p.111)
-정은, 산책을 듣는 시간,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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