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아가는 정체성

by 마음은 줄리어드

큰 아이 생일이다. 내가 처음으로 내 태 속에서 한 인간을 세상에 내보낸 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간 지 오늘로 딱 10년이 됐다. 미국 유학 시절,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큰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버클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던 베이 브릿지에서 어찌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는지 엄마가 됐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날이다.


큰 아이를 낳은 후 10년 동안 세 아이를 더 세상에 내보내고 나니 네 아이맘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그냥 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


그러다 문득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늙고 못 생기고 뚱뚱한 여자가 서 있었다. 자기 관리도 하지 않고 푹 늘어진 채로 폭식으로 우울함을 달래는 어글리 해 보이는 여자. 그 여자를 보고 강하게 결심했다. 그래, 다이어트를 해야지. 살을 쭉 빼서 예쁜 몸매로 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사람들이 멋있어할 거야, 인정해줄 거야. 그렇게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몸을 만들면서 잃어버린 자신감도 서서히 회복해갔다. 어느 순간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 돼가고 있는 듯했다.


엄마로 살면서 행복했지만 마음 한편은 늘 공허했다. 마음의 빈틈을 예쁜 몸을 만들어서 채워보려 했다. 그 당시 스미 홈트가 유행이었고, 나도 운동 전도사가 되어 저렇게 돈도 벌고 유명해져야지 했다. 그때의 허세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블로그도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고, 블로그 명도 그래서 '노라핏맘 (norafitmom)'이다. 운동하는 엄마, 노라. 그때 나는 나의 정체성을 운동하는 네 아이 엄마, 노라에 두었다. 운동이 전부였고, 내 모든 세계였다. 어느 순간 운동과 몸이 우상이 돼 있었다. 거울에 복근을 쳐다보던 어느 날 문득 허무함이 찾아왔다. 마음은 예쁘지도 않은 사람이 죽어서 썩어질 몸, 복근 만들어서 어쩔 건데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성취지향적으로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 목표 달성 후 예외 없이 찾아오는 증상이었다. 목적을 잃은 목표는 언제나 길을 잃기 마련이다.


내 영어 이름이 '노라'인 것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한 사립 대학교 국제교류실에서 근무할 때 폴 (Paul)이라는 외국인 직원이 내가 재즈를 부르는 '노라 존스'를 닮았다고 했다. 노라에다 내 성을 붙여 '노라노'라고 나를 불렀다. 나는 'Katie(케이티)'라는 영어 이름을 쓰고 있었는데 폴 말로는 그 이름이 굉장히 촌스럽다고 했다. 폴 말대로 왠지 '노라'가 '케이티'보다는 세련되게 들리기도 해서 영어 이름을 '노라'로 확 바꿔버렸다. 내 업무가 외국인들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이후로 사람들에게 쭉 '노라'로 불렸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결혼 전 노라도, 네 아이맘도, 노라핏맘도 아니다. 몸만들기에 이골이 난 뒤로 나는 오로지 내 마음 알아가기에 전력을 다해왔다. 발전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무던히도 읽었다. 읽는 것으로 만족이 되지 않았다. 네 아이들과 바둥바둥 지내면서도 내면의 감추어진 욕구를 표출할 무엇인가가 절실했다. 그게 글쓰기였다. 그렇게 나는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로서도 살기 위해 운동하다 읽다 결국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라의 장미>라는 그림책을 샀다. 절판된 책이라 온라인 중고매장을 샅샅이 뒤져서 깨끗한 것으로 샀다. 감기에 걸린 노라는 밖에 나가지 못하고 일주일째 집에 있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장미꽃이 피어있다. 여러 사람들이 와서 장미꽃을 한 송이, 두 송이 따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장미꽃이 한 송이밖에 안 남아있게 된다. 노라는 장미꽃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한다. 잘 말릴까, 말린 꽃잎을 조그만 단지에 넣어 둘까, 아니면, 향수로 만들까 고민한다. 결국 노라는 그 한 송이를 그림으로 그려 둔다.


그래서 그림이 된 장미꽃은 언제까지나 노라와 함께 있게 되었답니다
-이치카와 사토미, 노라의 장미 중-


그림책 속 노라에게는 마지막 한 떨기 장미꽃을 지키는 방법이 그림이었다. 나에겐 나와 내 삶을 지키고 치열했던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고 지키는 길은 글쓰기다. 2019년이 저물며 나를 정의한다. 나는 글 쓰는 노라다. 내 정체성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어간다.


2019.12.29. 큰 아이를 세상에 내보낸 날

책갈피 겸 명함도 만들었다. 책을 읽으며 책 사이사이에 꽂아 놓고 끊임없이 되새길 거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라고. 책을 출간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글을 쓰는 한 누가 뭐래도 나는 글 쓰는 노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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