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해남에서 태어나 자랐다. 늘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한없이 답답하고 좁은 곳이라 생각했다. 햄버거가 선망의 음식이었던 어린 시절, 햄버거 프랜차이즈라고는 고작 롯데리아가 다였다. 도심지에나 있다는 맥도널드나 버거킹이 내가 사는 곳엔 없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 속상했다. 티브이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백화점과 높은 빌딩, 지하철, 에버랜드를 가까이에 두고 사는 도시 애들이 부러웠다. 드문드문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마저도 해남에서는 수지 타산이 안 맞아 망해버렸다.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다. 태어난 곳이 다르다는 이유로 받는 부당한 문화 차별이라 여겼다. 머무르는 자리를 떠나야만 주어지는 기회라면 떠나야만 했다.
드넓은 세계를 동경했다. 답답한 해남으로부터 되도록 멀리멀리 벗어나고 싶어 아메리칸드림을 꿈꿨다. 중학교 영어 시간에 처음 영어를 접하고 이게 바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의 꿈을 마음껏 펼쳐줄 영어, 나를 땅끝마을로부터 벗어나게 해서 날개를 달아 줄 언어,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미국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수단인 영어가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외국어고등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대학도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 4학년 시절 비로소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랜 세월 동안 꿈에 그리던 곳이라 그런지 왠지 미국이라는 나라가 반갑고 정겹게 느껴졌다. 진짜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드디어 안착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나에겐 역시 해남보다 미국이 어울리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맞이한 여름 방학에는 배낭 하나 메고 100일 동안 혼자 미국, 캐나다, 유럽을 종횡무진했다. 너른 세상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은 평생 갈증이 해소되는 듯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국제교류 업무를 담당했던 나는 해외 출장만 잡히면 신이 났다. 출장을 가서도 짬을 내서 무얼 먹고 무엇을 보고 경험할지 바삐 움직였다.
결혼을 하고 신랑과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은 자유롭고 즐거웠다. 새로운 곳을 보는 것은 언제나 생에 활기를 선사했다.
여행이라면 환장하던 내가 네 아이의 엄마가 된 후로는 여행 '여'자만 들어도 손사래를 친다. 여행을 가도 사라지지 않는 밥 짓는 역할, 여섯 명의 짐을 꾸리고 풀고 정리하는 게 피곤하게만 느껴진다. 여름에는 네 개의 수영복에 구명조끼에 튜브까지 챙기려면 여행이 힐링이 아니라 수고로움으로 다가온다. 집을 떠나는 것은 더 이상 나에게 설렘과 흥분을 주지 않는다. 그저 귀찮은 일이 돼버렸다.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여섯 명이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서 선언했다. 막둥이가 똥오줌 잘 가리고 좀 더 클 때까지는 나는 넷 데리고 여행은 절대로 안 가겠다고. 결국 여행 좋아하는 신랑이 혼자 첫째, 둘째, 셋째, 세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에 갔다. 여섯 명 모두가 가서 힘드느니 각자 편한 길을 택했다.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즐기고, 여행에 불편함과 버거움을 주는 존재는 그냥 내가 집에 남아 데리고 있는 편이 서로의 시간을 더 좋게 만들어주는 길이다. 우리 부부가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우리만의 방식이랄까.
여행길을 나설 때 엄마만 놓고 가서 내가 불쌍하다는 큰 애에게 말해주었다. "엄마는 책이 있어서 여행 안 가도 돼. 책이 여행이야." 그래도 직접 경험이 더 좋고 재미있지 않냐고 아이는 반박했다. 괜찮다고 했다.
솔직한 심정이다. 책이 있고 쓸 글이 있어 여행에 대한 갈증이 싹 사라졌다. 책은 봐오지 못한 다른 세상을 보는 창이 되고 글은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이 되었다.
혼자서 100일의 세계 배낭여행을 감행했던 젊음의 패기와 열정을 추억하며 쓰니 그때의 자유가 조금은 그립긴 하다. 식솔이 없으니 무얼 먹고 마셔도 밥에 묶이지 않는 해방감, 어디 허름한 유스호스텔에서 자도 내 몸 하나 불편하면 그만인 시절, 누군가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런 것들이 그립다. 이런 자유함이 엄마가 되기 전에만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인지도 몰랐기에 마냥 순수했던 시절이다. 방황했지만 방황마저 이젠 닿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세계를 혼자 누비고 다니는 자유는 비록 누릴 수 없지만 오늘도 자판 앞에서 정신의 해방 공간으로 여행을 떠난다. 야망에 가득 찼던 땅끝마을 소녀의 시절로, 가슴 설레어 처음 밟은 미국 땅, 텍사스로, 자유시간 초콜릿으로 끼니를 때웠던 프랑스의 한복판에 서 있던 나, 그 젊은 시절의 한 때를 추억하며 쓰니 이것이 여행이다.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글쓰기는 나의 정신의 해방 공간, 나를 낡지 않게 하는 것, 세상을 나아가게 하는 여백.
오늘 저녁이면 신랑과 세 아이들이 돌아온다. 또다시 복작복작하는 내 진짜 삶으로 복귀한다. 오늘 오전 최후의 이 호사스러운 고독을 마음껏 누리자.
네 아이를 돌보며 글을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네 아이를 생각한다. 글 쓰는 노라이면서 네 아이맘, 네 아이의 엄마이면서 글 짓는 사람, 이것이 나의 본업이고 2019년에 내가 찾은 나의 정체성이다. 정글과 같은 일상에서도 언제든지 훌쩍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글쓰는 시간이 있어 참 다행이다.
나는 이러한 정신의 해방 공간이 우리 시대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곳곳에, 그리고 우리나라 곳곳에 이러한 자유로운 사고의 영역이 분명히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도 각자의 삶과 사고 속에 이러한 공간을 만들어 내야 함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자유 공간은 나를 낡지 않게 하고 세상을 나아가게 하는 여백이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의 세계기행, 더불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