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책장에서 꺼내본다.
나는 실패한 유지어터다. 한창 다이어트를 하고 몸을 만들 때 정점에 있었던 최상의 근력을 꾸준히 유지하지 못했다. 나태함 더하기 내면으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운동 중독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나 새해를 맞이하여 미뤄둔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오늘은 오랜만에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의 글 쓰는 노라가 있기까지 운동 전도사로 나섰던 시절이 있다. 근력 운동은 2년 전 블로그를 시작하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다이어트 비법을 많은 이에게 전수하겠다고 열심히 블로그에 운동과 식단 글을 올렸던 날들이다. 근력 운동을 안 하던 시절과 근력 운동을 하던 시절 이후로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 수치가 확연히 달라짐을 몸소 느꼈다. 몸의 근육 구석구석에 집중하는 근력 운동이 우울과 불안, 초조함을 달래주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어제 오랜만에 근력 운동 홈트를 했다. 무언가 1월 1일부터 시작한다는 건 이상할 만큼 나에게 거부감이 인다. 12월 31일도 못 하는 거를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고 해서 딱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의 경험에서 누구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단순한 이유로 어제 마음 먹고 운동을 했다.
한 평짜리 뽀로로 매트, 몇 개의 아령, 스텝박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나오는 음악만 있으면 내 몸의 근육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 얼마나 오랜만에 홈트이고 땀이었는지 처음 근력 운동을 시작했던 초심이 새록새록 떠올라 감회에 젖었다.
어제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다름 아닌 불안과 초조함이었다. 오전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또 한 해가 정처 없이 흘러감을 열렬하게 붙들고 싶다. 미처 완독 하지 못한 책, 사놓고 펼치지도 못한 책, 나를 글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이끌어준 밑줄 속 찬란한 문장들. 이 책, 저 책, 욕심껏 펼치다 보니 이내 정신은 조바심과 불안함에 잠식당했다. 한 문장이라도, 책 한 권이라도 더 붙잡고 싶어 정신이 발악했다. 불쾌한 정서의 위험 수위를 느끼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몸을 움직이고 나니 한결 머리가 개운해졌다. 더 이상 초조하지 않았다. 속도는 느리지만 내가 선택한 길, 천천히 걸어보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근력 운동을 하며 땀을 흠뻑 흘리면서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지만 정신의 역동성은 육체의 살아있음 안에서만 현존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책장에서 꺼내본다. 몇십 년을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달리고 쓰고 달리고 썼던 한 소설가를 생각한다. 세상이 열광하는 작품을 수십 권을 내놓은 그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라고 고백한다. 하루키에게 집중력과 지속력을 배운다. 한 인간이 보여준 달리기와 쓰기의 지속 가능성과 실현성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고 싶다.
여전히 어제처럼 정서의 심연에 기생하는 불길한 초조함이 때때로 나를 걷잡을 수 없이 잡아먹지만 굳이 하루키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운동과 글쓰기에서 나 스스로가 터득하지 않았나. 집중력과 지속력은 한 가지 기술을 연마하는 데 필요한 가장 큰 두 축이라는 것을. <도토리시간>의 작가 이진희처럼 혼자서 1년 은둔을 하며 작품 활동을 할 수는 없지만 정글 속에서도 집중하고 지속할 수는 있다.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거장들과 쏟아지는 출판계 신예들의 필력에 아직도 나는 수도 없이 절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라린 좌절감을 뿌리치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자판기 앞에 앉을 수 있는 힘이 그 동안 쓰기를 지속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길러졌다.
운동 전도사를 자처했던 시절, 운동의 최종 목표는 외면의 아름다움에 있었다. 그래서 26사이즈와 55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는 결국 스스로가 나가 떨어졌는지 모른다. 1년 정도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에 미쳐있었지만 목표 달성후 안이함과 공허함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왔다.
새해에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누군가에게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왜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지, 다이어트보다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외면이 아름다워지면 거기에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일시적으로 급격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집중력과 지속력에 대해서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반드시 다이어트를 달성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요요와 공허감, 불만족은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목표가 아닌 목적을 생각하려 한다. 지금 나에게 운동은 글을 오래 꾸준히 쓰기 위한, 그리고 여섯 가족 모두를 오래 건강하게 지켜줄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목적이 확실한 이상 아령 들기를 망설이고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제는 끝내주는 청바지 핏을 위해서가 아니라 쓰기 위해 아령을 든다.
다시, 새로운 정체성을 쓴다. 나는 근력 운동하는 글 쓰는 노라다. 아령을 들면서 쓰기를 생각할 거고, 글을 쓰면서 몸을 생각하기로 한다. 매일 아주 적은 시간이라도 운동과 글쓰기에 내 자신을 기꺼이 내 주면서 집중하면서 꾸준히.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p.122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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