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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Nov 21. 2021

재미있기만 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다 자기가 좋아서 벌인 일들이지만 갑자기 한꺼번에 몰려온 총체적인 난국.


피아노 :

<라라랜드> 제이콥 콜러 재즈 피아노 버전은 너무 빨라서 여러 번 연습해도 그런 속도가 안 나니 흥이 안 나고.


비올라:

내일 레슨이라 짬짬이 연습하는데도 운지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 욕심만큼 안 되고. 현 이동할 때 깽깽깽거리고.


성악:

소리를 이마 쪽에 붙이라는데 도대체 이게 되고 있는 건지 뭔지 도통 모르겠고.


기타:

막둥이 등록해놓은 거 내가 얼떨결에 듣게 되서 3회 정도 레슨받았는데 기본 코드는 쉬워서 흥미가 붙었는데. 하이코드 들어가니 운지가 너무 어렵네. 소리도 맑게 잘 안 나고.


첼로:

현 넘어갈 때 깽깽 소리나는 거. 언제쯤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10년의 임신, 출산, 육아에 올인한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원하는 듯 미친 듯이 이것 저것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배우고 있다. 아주 이기적인 마음으로.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고 있지만 사립 대학 음대 등록금도 한 한기에 500도 넘는데, 아니, 500이 뭐야. 요즘은 700에 육박한다던데 그거에 비하면 한 달에 이 정도는 쓸 수 있다는 당위성까지 세워놓고.


'그런데 이게 뭐람. 돈도 적잖게 드는 데다 경제적으로 뭔가를 바로 이뤄낼 수 있는 기술도 아닌데 배우면서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나? 다 때려치워? 악기 연습 이것저것 한답시고 더 중요한 운동과 건강식단은 요즘 뒷전이고. 이러다 건강 망가져 음악 오래 할 수 있겠어?' 라는 삐뚫어진  생각이 몇 일 동안 들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음악이 스트레스였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손등을 때려가며 피아노 연습을 스타르타로 시켰던 엄마. 피아노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갈 때의 심리적 압박감. 대회를 앞두면 하루에 두 번씩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게 지옥 같았던 유년기 시절. 나보다 훨씬 뛰어난 대회 참가자를 보면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심리적 압박감. 양장점에 가서 맞춤 드레스를 제단하고 그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면 늘 엄마의 꼭두각시 같았던 느낌. 어려서부터 음악은 즐기는 게 아니라 음악도 공부처럼 경쟁 세계의 하나로 여겨졌던 어린 시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면서 또 마음이 한없이 다운된다. 벗어날 수 없는 유년 시절이라는 굴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엄마와 나와의 얽힌 관계.


자기가 좋아 열정적으로 시작했지만 스트레스 상황이 닥치면 갑자기 무너져내리는 내면의 벽. 지금 나의 숙제. 스스로의 마음 감옥을 벗어나 벽 너머를 보기.    

꼬마 생쥐야, 네 인생에는 수많은 벽이 있을 거야. 어떤 벽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지만 대부분은 네 스스로 만들게 돼.
하지만 네가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 놓는다면 그 벽들은 하나씩 사라질 거야. 그리고 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할 수 있을 테고.
<빨간 벽>, 브리타 테켄트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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