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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Feb 25. 2020

코로나19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하고 랑베르는 돌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p.216-

현실에 대한 답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문학의 다양한 군상들을 참고하게 됩니다. 페스트 2부에서는 각양각생의 사람들이 각자의 태도로 페스트를 대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오랑 시는 이미 페스트로 인해 도시가 폐쇄됐습니다. 신문기자, 랑베르는 오랑 시에 취재를 왔다 발이 묶여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됩니다. 전염병 확산의 이유로 도시 이탈은 명백히 불법입니다. 이런 상황에 탈출을 시도하는 랑베르에게 의사 리유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말합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외출이 삼가돼 누군가는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고, 전면에 나서야 하는 누군가는 두려움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맡은 일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미된 자로서 네 아이들 잘 먹이고, 잘 놀리고, 잘 재우고 그렇게 성실히 이 시간을 지내야겠지요. 아무리 집에 있더라도 시간을 도둑맞기는 싫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아이들 영화 틀어주는 틈을 타서 스텝박스를 꺼내 홈트, 운동을 했습니다. 가족들을 건강히 지키려면 제가 먼저 건강해야 하니까요. 운동을 한다는 것은 저에게 기호와 취미를 넘어서 엄마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 성실성입니다.


아침에 자연드림 인터넷 장 배달이 왔습니다. 이 시국에 인터넷 주문만 늘어가고 이 집, 저 집, 배달을 다니셔야 하는 택배 기사님과 마트 배달 기사님들을 떠올립니다. 건강 우려와 가구수 과부하로 비대면 문앞 공급이라는 기사님의 문자에 배달온 음식 재료들을 바라봅니다. 기사님은 이미 떠나고 난 뒤입니다. 음식 재료들을 집 안에 들여 넣으며 답문을 보냈습니다.

시국이 이러한데 맡으신 일에 애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크와 건강 챙기십시오.


이렇게 답문을 보내고 나니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건 기사님이기 이전에 저입니다.



창세기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장 3절

기사님을 축복하니 제가 축복받은 느낌입니다. 전염병으로 어려운 시국이지만 코로나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에 모두 최선을 다 하는 시간을 가꿔나가시길 바랍니다.


20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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