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

by 마음은 줄리어드

내 인생에 첫사랑이 생각났다. 요즘 부쩍 시가 눈에 들어오다 보니 시와 관련된 그 사람이 생각났다. 그 사람은 시인이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자 국어 선생님이다.


집채만 한 풍채가 멋들어져 보였고, 우렁찬 목소리로 교실을 호령하시는 카리스마에 반했다. 걸음걸이도 어찌나 늠름하신지 복도에 선생님이 지나갈세라 모퉁이에 숨어서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당시 반장이었는데 선생님들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갈 때면 선생님을 한 번 더 뵐 생각에 세상 행복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이성에 눈을 뜨면서 또래의 남자애들은 선생님의 당당함에 비하면 왠지 모두 꾀죄죄하고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다 코흘리개 같아 보여 싫었다.


사춘기 열병이었겠지만 하도 열렬히 선생님을 사모해서인지 사모님에게도 질투가 났다. 부부 금실도 좋기로 유명하셨다. 상당한 미인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서로 세례명을 부르며 일요일마다 성당에 다니시기도 하셨다. 저런 멋진 남자와 같이 사는 여자는 도대체 누구야 배배 꼬인 심사가 들어 울적해지곤 했다.


어제 선생님께 오랜만에 카톡을 보냈다. 요즘도 시 쓰시냐고 써놓은 시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동인지에 발표하신 간병기 세 편을 보내주셨다. 누가 아프시냐고 물었다.


내가 그리 질투했던 그녀가 병상에 누워있다. 선생님의 사연이 기구하고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하도 애처로워 어젯밤엔 좀처럼 잠을 쉬이 이룰 수 없었다. 숱한 밤을 병상을 지키신 선생님, 몹쓸 병과 사투하고 있는 그녀, 병듦과 나이 듦과 죽음으로부터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 한 자 한 자 눈물로 눌러쓰셨을 하얀 밤들을 생각하니 스승님의 시를 나도 한 자 한 자 적고 싶었다.


필사한 걸 카톡으로 보내드리니 새롭다고 하셨다. "괜한 걸 보냈나 보다. 좋은 것도 이상 있는데..."라며 수줍어하신다.


"건강하게 잘 살어. 건강 잃으니까 아무것도 안 남어. 신랑하고도 알콩달콩 잘 살고. 그럴 때가 젤 좋드라." 하신 내 첫사랑의 카톡이 마음속에 계속 울린다.


여기, 스승님의 시를 올린다. 그 때 시인 국어 선생님과의 인연이 돌고 돌아 나도 사십 넘어 결국 쓰는 사람이 돼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인생에서 그냥 스친 인연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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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아직은 선생님의 사연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으신 것 같아 지금은 익명으로 올립니다. 허락하시면 성함을 표기하겠습니다.


2020.1.17

내 첫사랑을 추억하며,

스승님의 눈물 나는 간병기를 필사하며,

글 쓰는 노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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