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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May 08. 2020

코로나가 준 새벽이라는 선물

-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

우리는 나와 너를 구분 짓기를 좋아한다. A형, B형, O형, AB형으로 나와 너를 나누고 그 그룹 안에서 각자의 특징을 규정한다. 내향성과 외향성으로 나와 너를 나누고 성격의 유형을 구별 짓는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형'들이 많은지. 그 외에도 집순이나 집돌이 형, 사교형, 벼락치기형, 여러 가지 유형으로 자신과 타인을 구분 짓는다. 수면의 취향으로도 인간의 부류를 둘로 쪼개기도 한다. 올빼미형과 아침형 인간.


나는 평생을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았다. 아침잠이 많았다. 사십이 넘도록 나는 으레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엄마가 된 이후로는 더더욱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었다. 자의가 아니라 아이들이라는 타의에 의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야 하는 매일 아침은 그야말로 곤욕이었다. 누구 밥해주러 일어나는 것 말고, 누구 쉬 뉘려고 일어나는 것 말고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잠 한 번 실컷 자보는 게 평생 가장 큰 소원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더더욱 올빼미형으로 변한 건 내 시간에 대한 갈망이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이 좋았다. 잠을 청하기를 애써 미루고 미뤄 한 시, 두 시 넘어 자기 일쑤였다. 그러고 나면 다음 날은 여지없이 피곤했다.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어 신랑과 서로 일어나기를 미뤘다.


코로나 집콕 생활이 시작된 후로 네 아이와 날마다 같이 집에 있으니 어떻게든 새로운 일상을 지키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네 아이와 부대끼는 일상, 세 끼 집밥, 아우성으로부터 탈출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외출은 제한적이고 집이 제일 안전한 곳이라 집에 머물러야 하니 공간적 탈출은 불가능했다.


공간과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필사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이렇게 나에게 미라클모닝이 찾아왔다. 새로운 시간의 세계가 시작됐다. 덕분에 내 인생과는 요원했던 새벽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을 새록새록 느끼고 있다. 성경을 읽고 '5년 후 나에게 다이어리'를 쓰면서 새벽 시간을 시작한다. 조용히 글이나 일기를 쓰기도 한다. 배가 출출해지면 혼자 예쁜 그릇에 밥도 차려 먹는다. 칠흑에 혼자 먹는 아침이 꿀맛이다. 혼자 마시는 커피의 달콤함은 말해 무엇하랴. 집이 카페고 부엌이 서재다.


모모는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는데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라고 했다. (미하엘 엔데, <모모> p.89) 시간이 비밀이라면 나는 비밀 중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새벽 시간이라는 극비 말이다. 이번 코로나 집콕 생활이 아니었더라면 내 인생에 그냥 흘러갔을 비밀의 시간, 그냥 묻혀있었을 시간.  


이 비밀은 코로나라는 질곡이 없었으면 발견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등교, 등원하면 나름대로 나만의 자유 시간이 있었으니 코로나 집콕 시기만큼 혼자만의 시간을 간절히 찾지 않았을 거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라는 말씀이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는 분명 나를 힘들게 하는 고난이었지만, 고통 속에서 새벽이라는 빛나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만났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계속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 아니, 일어나기 싫은 사람의 유형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흔히들 말하는 '미라클 모닝'을 스스로가 경험하면서 자꾸 의문이 들었다. 왜 미라클 이브닝은 없고 미라클 모닝만 있을까? 가장 큰 차이가 뭘까? 왜 밤을 붙드는 것보다 새벽을 여는 게 나에게 더 큰 즐거움을 줄까? 밤에는 지나가는 하루를 붙들고 싶어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새벽을 여는 마음에는 새롭게 쓸 수 있는 하루를 시작하는 기대감이 크게 서려 있다. 즉 마음의 차이다.


아쉬운 마음보다는 기대하는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이 마음을 나는 새벽에게 배운다. 코로나가 아닌 또 다른 역경, 더한 고난도 살면서 찾아오겠지. 하지만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잠언 27:21) 제련하듯 삶의 질곡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새벽이 내게 준다. 고마워,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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