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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May 08. 2020

어버이날 드러난 나의 실체

- 아들의 편지를 받고 -

엄마가 문학을 좋아하는 걸 알고 5학년 아들이 시 편지 선물을 줬다. 제목은 '즐거운 삶'이다. 아들이 지은 시의 마지막 구절에 이런 글귀가 있다.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것을 찾자"

아들의 시 편지 중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표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벌거벗은 모습을 들킨 기분이다. 사실 성격적인 결함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리는 보통 집에서 발가벗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들의 글귀로 보니 제대로 현장 발각이 된 기분이다. 내 어두운 표정은 실체고 사실이다. 웃지 않는 엄마, 매일 일상에 찌든 엄마, 행복해 보이지 않는 엄마, 내 아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아 보여?"


그렇단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심각해 보인다고 한다. 웃지 않으니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단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쉬이 바뀌지 않는 표정은 사실 얼굴에 아로새겨진 내 마음 상태다. 


나의 불만족은 어디에서 올까? 사실 행복하지 않다. 채워도 채워도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 내면 깊은 곳에 평안과 충만함은 아직 없다. 


나의 과거지사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만은 다시 과거로 냉철히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 엄마는 항상 불만족 상태였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 왜 이렇게 인상 쓰고 고민하며 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한 세대가 흘러 내 아들에게 역으로 내가 그런 사람으로 비치다니 마음이 아프다.


웃고 싶다. 내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진정으로 편안한 표정을 가지고 싶다. 어버이로서 편안한 표정을 보여주고 싶다. 


오늘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다. "주님, 제 표정을 바꿔주세요. 평안과 온유함, 행복함을 저에게 주세요. "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김애란, 풍경의 쓸모, <바깥은 여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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