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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May 12. 2020

위기극복의 DNA가 있다고?

-누군가는 이태원 클럽에 갔고 개학은 또 미뤄졌다-

코로나가 창궐하자마자 TV 광고에 이 말이 나왔다.

대한민국엔 위기극복의 DNA가 있습니다.


마음 한 켠에는 자부심이 일었다. 그래, 일제의 식민지로 살 때도 우리는 수많은 목숨을 잃어가며 독립운동을 했었지. 군부 독재 시절에도 안타까운 젊은 피를 희생해가며 그 모진 수모 감당했었지. 나라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6.25 전쟁도 건너왔지. 전후 먹고살기 힘들어 국민들이 굶어 죽어 나갈 때도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지.


그런데 나는 왜 이 말이 불편했을까?

한겨레 2020.5.12일자 2면 광고 중

왜인지 모르게 압박감을 느낀다.




착한 아이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어떤 한 아이가 있다고 하자. 아이는 악한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참 착한 아이야.", 또는 "넌 착하니까."라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아이는 자신의 실제 모습과 사람들이 바라보는 모습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껴 심적으로 괴롭다. 마치 이 아이와 같은 기분이다. 나는 몹시 약한데 강한 사람으로 인식당하는.


오늘자 (2020.5.12) 한겨레 신문 광고에서 이 말을 다시 한번 마주치니 마음이 싸해지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전국 각지에서 '클럽 원정'을 떠나 즐긴 이들이 코로나 진단 검사를 받고, 확진자가 여럿 발생하는 가운데 개학은 또 1주일 미뤄졌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면서 이제 코로나도 잠잠해지나 보다, 아이들도 개학도 곧 앞두고 있으니 조금만 더 버티자 했던 사람들의 기대감이 일순간에 또 무너졌다. 생활 방역 시기에 밀집된 장소에 춤을 추러 서울까지 원정을 간 무모한 사람들의 행동은 감염병 확산을 막고자 하는 정부의 몇 달간의 노력을 물거품을 만들었다.


국민들은 지쳤고 약해져 있다. 그런데 자꾸 강해지라고 강요당하는 것 같다.


너는 말이야, 강하잖아. 지금까지도 강했고 앞으로도 강할 거야. 이쯤 코로나 뭐가 문제야? 또 헤쳐나갈 수 있어.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우리가 설령 강한 민족이더라도 과연 우리는 유전적으로 강할까? 역사적으로 여러 상황이 우리를 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여리다. 아프고 약하다. 분별없는 자들을 실컷 비난하고 싶은 악한 감정을 느낀다. 코로나의 장기화가 현실이구나라고 느껴지면서 가슴이 한 켠 답답해진다.

정말 우리 코로나 이겨낼 수 있을까? 코로나, 언젠가는 진짜 끝나긴 하는 걸까?


감사함으로 꿋꿋이 두 달간 코로나 사태를 잘 버텨왔던 나도 오늘만은 이런 의구심이 든다.

한겨레 2020.5.12일자 2면 광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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