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은 줄리어드 May 19. 2020

살아 있다는 건 말이야

-폭풍 속 고요-

셋째 딸아이가 깁스를 푼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큰 아들이 깁스를 했다. 나에게 달라진 점이라면 저번에 딸은 왼팔이었고, 이번에 아들은 오른팔이다. 저번에 딸 뼈엔 금이 갔는데, 이번에 아들 뼈는 부러졌다.


놀이터에서 셋째, 넷째 아이를 놀리고 있는데 걸려온 모르는 전화번호. 아들이 친구 전화를 빌려 전화를 했다. "엄마, 나 힘줄이 나간 것 같아." 놀란 가슴 안고 부랴부랴 동네 야구장으로 달려갔다. 딱 봐도 부러졌다. 팔이 휘어있다. 신랑에게 전화했지만 제주도 출장 중이다. 어쩔 수 없이 야구하는 둘째만 야구장에 놔두고 다친 아이와 셋째, 넷째 아이들을 들쳐업고 정형외과에 달려갔다.  


부러졌단다. 일단 부목을 대놨고 내일 정밀검사를 받으러 대학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최악의 경우를 이야기하니, 예후가 안 좋은 경우 철심을 박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평안하다. 아이를 전혀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았다. 불안하거나 걱정이 되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된다.


나는 지난 일에 대한 후회를 일삼던 사람이다. 미래에 대해서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책이 삶을 하나도 바꾸어 놓지 않았다고 누누이 자괴감이 들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정신적으로 많이 건강해진 나를 발견한다. 이런 내가 어색하지만 반갑다.


오른팔이 부러진 다 큰 아들, 12살짜리 아이를 샤워시켜주고 밥도 먹여주었다. 샅샅이 타월로 닦아주고 부목에 음식을 흘릴 세라 두부김치 해서 정성껏 밥을 먹여줬다. "엄마가 목욕도 시켜줬으면 좋겠고, 밥도 먹여 줬으면 좋겠기에 아기가 되고 싶었구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감사했다. 내가 씻겨줄 수 있어서. 내가 먹여줄 수 있어서. 눈이 다친 게 아니라서. 그래서 사랑하는 우리, 서로 볼 수 있어서.  


오늘 낮에 산책하다 사서 꽂아둔 꽃을 본다. 찬찬히 본다. 오늘 큰 아들도 먹여주고 씻겨주며 자세히 오래 볼 수 있어 감사했다.


꽃을 사온 나에게 큰 아들이 타박을 준다. 돈 아깝다고. 그냥 다년생을 사서 키우라고.


엄마 선인장도 죽였던 사람인 거 모르냐고. 화분은 못 키우지만 꽃병 물은 갈아줄 수 있다고. 나 일주일에 만 원씩, 한 달에 네 번 꽃 사면 안 되냐고 반박했다.


전쟁과 같은 하루였지만 폭풍 속에 고요했다. 꽃을 다시 본다.


살아 있다는 건 말이야. 산책하다 문득 한 다발의 작은 꽃을 사들고 와서 꽃병에 꽂아두는 것.


살아 있다는 건 꽃 사는 걸 지극히도 싫어했던 한 여자가 중년이 되니 꽃내음을 맡고 있는 것.


살아 있다는 건 조금씩 변화하는 나를 느끼는 것.


살아 있다는 건 나쁜 일에도 마음에 평안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것.  


2020.5.18

폭풍 속에 느낀 평안과 감사함에 감사하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뒤처리 감당이 안 돼 꽃 사기를 싫어했던 여자의 꽃 사기

산책하다 실컷 봄꽃 구경했으니 꽃 사지 말자 마음 먹었는데 결국 만 원을 투척하고 말았다. 일주일간 나의 새벽을 밝혀줄 꽃. 만 원을 7로 나눠서 하루에 1500원꼴이라고 커피값도 안 된다고 자위해 본다.

토요일날 가족들과 함께 작은 산에 갔을 때 이거 있었다고 신랑이 오늘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줬다. 왜 나는 놓쳤지? 이제 마누라 좋아하는 게 뭔지 조금 아는 것 같다^^
아파트 담장 너머 흐드러지게 핀 장미들
세상의 땅을 딛고 나가는 내 두 발
오늘 산책길에 만난 금계국, 봄의 코스모스 같은 너


작가의 이전글 위기극복의 DNA가 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