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면, 공기가 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잠의 기운’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여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한다. 가을에서 겨울로 온도가 차가워져서 창문을 닫고 지내는 계절일수록 환기는 의식적으로 챙기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거나 음식을 해먹었을 때 ‘냄새’를 이유로 환기는 필요해졌다. 하지만 2017년의 봄부터 이상함을 감지했다. 아침에 바깥공기를 쐬면 콧물이 나오며 재채기가 일었고, 이내 목이 붓는 몸살로 이어졌다. 환절기에 거치는 통과의례 즈음으로 생각했지만, 감기약을 먹고 일주일이 지나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 내과에서 이비인후과로 옮기고 나서야 알레르기성 비염이라고 진단했고, 비염에 대한 치료약들을 처방받았다. 알레르기의 원인은 바로 ‘먼지’, 아니 미세먼지였다.
이때부터 미세먼지의 존재를 인지했다. 외부에 나가기 전 수치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꼭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여지없이 비염이 돋았고, 목안이 부어올랐다. 편도선은 군대에서 한번, 대학에서 또 한 번 크게 부어올라서 입원을 했었다. 재발을 우려해서 절개수술을 받았고 이후 감기에 걸려도 목이 붓지 않아 편했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만나면서 편도가 없는 만큼, 더 민감하게 반응했고 편도 대신 목 안쪽에 인후가 부어 인후염으로 나타났다. 비염과 인후염 모두 염증이 생긴 것이고, 염증은 몸에 열을 동반한다. ‘항생제’를 먹어야 했다. 항생제를 먹으면 몸에서 증기가 피어나는 느낌으로, 뭔가 몸 안에서 항체가 열심히 싸우는 듯 에너지 소모가 심했다. 활동적으로 생활할 수가 없어서 작업도 마음처럼 할 수 없어졌다.
2017년에는 장마를 기점으로 더 이상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2018년도는 겨울인 1월부터 미세먼지가 심해졌다. 마찬가지로 장마인 7월 이전까지 나에게 외부공기는 늘 숫자로 확인해야 하는 나날이었다. 문제는 외출을 하면 식당, 카페 중 어딘가 실내에 들어가서 일정 시간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실내라고 해도 안심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개 4월부터는 다들 창문을 열어두기 때문이었다. 가장 어려운 건 5-6월이다. 온도가 올라가서 창문을 열지 않을 수 없지만 미세먼지는 여전히 나쁨인 상태. 7월부터는 대체로 에어컨을 가동하기에 어디에 가도 창문이 닫혀있지만, 6월까지는 사람들이 더위를 이유로 창문을 열어놓고, 특히 식당은 손님을 맞기 위해 아예 노천인 듯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사람을 만나서 마스크를 쓰고 있을 수 는 없기에, 외부에서 약속을 잡는 일에 점점 주저하게 되었다. 그저 약속한 그 날에 공기가 덜 나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2017년도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을 유별나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2019년인 지금에서야 보편적인 ‘어려움’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9년을 막 넘긴 1월 초반에 수치가 250이상으로 5일간 지속되었다. 이전까지는 창문을 잘 닫아두고 안에서 공기청정기만 돌리면 방어 할 수 있었다. 창문을 닫아도 샷시의 틈으로 초미세먼지가 유입되었는지 실내 수치는 60이 넘어갔다. 24시간 공기청정기를 계속 돌려야 했고 2일이 지나자 환기하지 못한 실내 공기는 점점 위협적으로 변해갔다. 마치 방에 히터를 켜놓은 듯 머리가 둔해졌고 두통으로 이어졌다. 그제야 환기가 안 된 실내공기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지만, 바깥의 회색공기를 받아들여야 할지는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세먼지 대책카페’에 접속해야 나만큼 위험도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다. 창문에 차량용 에어컨 필터를 길게 이어붙여 환기하거나, 공기청정기에 장치를 달아 외부 공기를 환기하는 상품을 구입하는 등 여러 정보들이 있었다. 나도 그것까지는 좀 ‘유별나다’고 생각했었는데, 5일간 지속되는 환경을 겪고서야, 실내공기 중 화학물질(TVOC)와 이산화탄소(CO2) 그리고 미세먼지가 측정되는 측정기를 구매하고, 베란다에 설치할 미세먼지 필터를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창 밖의 풍경은 회색으로 뚜렷하다. 미세먼지 저감조치 문자는 9일째 도착해 200 이상의 수치인 날이 2주째 이어지고 있다. 뉴스기사를 보면 이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이것이 ‘보편적인 재난’이라는 사회적 여론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중국발이냐 국내요인이냐를 따지고 있는 여론은 소모적이며, 정부가 해결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다. 공장은 타지에 있고 한국 정부에겐 멈추라 할 권한은 없다. 에어비쥬얼(Airvisual) 어플로 세계를 보면 아시아와 인도 동남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는 가장 붉은색 오염도를 보인다. 반면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은 푸르고 쾌청한 공기를 나타낸다. 매연을 내뿜던 각국의 공장은, 값싼 노동력으로 경제개발을 원하던 후발 국가들의 영토에 들어섰다. 개발에 맞추어 자연을 내어준 셈이다. 중국의 공장과 발전소 굴뚝은 대체로 동쪽에 위치하며, 우리나라가 하필 그 옆자리라는 불운을 탓해야 할까. 가성비 좋은 샤오미 공기청정기를 구매하면 중국 굴뚝에서 연기가 솟는 구조, 내 주방에 가스렌지 보다 전기로 돌리는 인덕션을 구매하여 오염을 낮추지만, 석탄을 태운 남쪽의 화력발전소의 연기가 창밖에 떠다니는 구조. 생활 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 상황은 쉽게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가성비를 따지며 구입한 제품들의 출처가 중국의 공장을 거쳤고, 내가 지불했던 비용에 포함되지 않은 ‘진짜 비용’이 공기를 통해 다가오고 있다. 지구촌 온난화로 북극에서 찬 바람이 불지 않아, 오염물질이 한반도에 누적되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고농도 미세먼지가 심해질 수록 필터가 장착 된 제품들이 솔루션인양, 인터넷 쇼핑몰에 등장한다. 대체로 전기와 플라스틱을 녹여 만든 제품들이다. 어딘가의 공장에서 만들어질 것이고, 도시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둔 화력발전소의 전력을 끌어다 쓴다. 농토와 산림처럼 삶의 터전에 말뚝처럼 박힌 송전탑들을 지나 내 방에 끊기지 않기 위해 흐른다. 소비로 내 삶의 쾌적함을 담보하려는 삶의 방식이 전환되지 않는 한, 여전히 도로를 더 만들어 더 많은 자동차가 굴러다니게 하는 개발이 있는 한, 이 회색안개가 걷힐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회색의 풍경이 지속되는 동안, 나에게는 밖에 나갈 수 없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 광장과 길 위에서 호소하는 어려운 사연를 접하더라도, 선뜻 갈수 없는 핑계가 늘었다. 그곳에 선뜻 달려가 함께 머물 수 있는 용기 대신, 음추러드는 근거만 더 뚜렷해진다. 자기 세계로의 후퇴와 도피하는 근거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늘어간다. 세기말 같이 음산한 회색의 풍경과, 공기라는 보이지 않는 위협은 우리를 지금보다 더 한 발짝 물러서게 만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