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영 Oct 23. 2020

각자의 수고

그림책 <하늘에>를 그리면서 가장 어려운 건 건물이었다. 수채화로 건물의 반듯한 직선을 그으려면 손목부터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팔꿈치를 고정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붓을 움직여야 실수가 적었다. 늘 종이를 반쯤 돌려서 오른손이 움직이기 편한 자세로 반듯하게 건물을 채색하였다. 그중 철탑이 클로즈업되어 등장하는 장면은 직선의 끝판왕이었다. 선이 흐트러질까 봐 긴장하며 붓끝을 꽉 움켜쥐는데, 한 동작만 반복되니 몸의 통증으로 이어졌다. 오른쪽 어깨를 풀어보려 용하다는 태국 호랑이 연고도 바르고 마사지해보지만, 작업이 끝나지 않는 한 통증은 심해졌다.     


철탑 이미지를 완성한 날 목욕을 갔다. 작업으로 쌓인 피로를 주기적으로 풀어주는데 목욕이 제일 좋다. 6시가 조금 지난 금요일이면 한주의 피로를 풀기 위해 어디선가 일과를 마친 사내들이 속속 탕으로 들어선다. 나도 나름의 수고를 풀기 위해 탕에 들어갔다. 목욕의 백미는 뜨거운 열탕이다. 경직된 몸을 노곤 노곤하게 풀어주는 데는 온탕보다 열탕이다. 뭉쳐버린 어깨에는 냉탕의 물대포를 쏘인다. 요란하게 쏴대는 물대포를 맞다 보면 냉탕에서 노는 어린이가 신기하게 쳐다본다. 나도 저런 건 아저씨들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물대포를 꽤나 진지하게 맞고 있는 아제가 되었다.     


“오늘은 몇 키로 운행했어요?”

열탕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아저씨들이 있다. 택시 운행을 마감한 기사들이었다. 한 택시기사는 하루에 150킬로미터를 운행한다고 했다. 대략 은평구에서 마포구 사이가 10킬로미터이니, 그만큼 이동하는 손님을 15번은 태워야 채워지는 숫자이다.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라는 것을 이동거리와 매출처럼 숫자로 확인하는 직업이다.      


그림은 하루의 성과가 구체적이지 않다. 매일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면 가장 정확하겠지만, 구성과 드로잉, 채색, 보정 및 완성까지 딱 하루 분량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지면을 얼마나 채웠는지 가시적인 성과로 보이는 날은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머리만 굴리며 자료를 찾거나, 영 마음에 드는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 날은 ‘오늘 뭐했나’싶은 마음으로 책상에서 멀어진다. 허공에 날린 선들도 하루치 분량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150킬로미터의 택시기사는 내가 열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할 때에도 열탕에만 앉아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를 반가워하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다시 목욕탕에 나타났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한 사내가 드링크제 뚜껑을 드르륵 따며 그에게 건네었다. 각자 차 안에서 미터기 숫자를 채우지만 목욕탕에서 만나 서로의 수고를 나누는 장면이라니. 드링크를 건네는 모습 너머 ‘타다’ 서비스에 반대하는 택시기사 집회 뉴스도 포개져 보였다.   



동종업계란 저런 것이구나.

겨우 풀려가는 나의 어깨를 매만지며 저들의 연대감이 새삼 부러웠다. 열탕을 나와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옆에 목발이 보였다. 목발을 훑던 나의 시선은 이내 뭉툭해져 버린 그의 발목에 닿았다. 어떠한 사연으로 잃었을지 모를 그의 발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사고와 재활 그리고 다시 하루에 150킬로미터를 주행하게 된 그의 회복. 유독 그를 반가워했던 사람들은, 그의 목발 너머의 사연과 복귀를 진심으로 응원하던 것이었다.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같은 직업을 짊어진 누군가의 회복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동종업계란 자신만 느끼는 고충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자신의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경쟁관계에 놓이기도 하지만, 공동의 이해관계가 침범당하면 같이 힘을 모아 싸워서 지켜내는 관계.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같은 번호의 버스가 지나 칠 때 기사 분들이 손 인사를 볼 수 있다. 종일 운전석에 앉아 있는 상대에게 서로 ‘수고한다’며 건네는 인사가 참 좋다고 느낀다. ‘너도 나만큼 거기서 수고가 많구나.’ 나의 고충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건네는 힘을 주는 인사이다.     


오늘도 의자에 앉아 종이와 모니터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각자의 이미지를 생산하느라 애쓰고 있는 이들의 수고는 보이지 않는다. SNS에 세련되게 갈무리된 그들의 아이디 너머로, ‘아~ 오늘도 그림 그리느라 수고가 많아요.’하며 손 인사를 건네고 싶어 진다. 온라인의 댓글 외에 마주칠 일은 희박한 사람들. 누군가 나처럼 어깨를 풀러 같은 목욕탕에 올 일도 없겠지만, 서로를 알아볼 일도 없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