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한다고 하면 마치 한가로운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산책의 찬양서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을 읽으면 이것이 삶에 왜 필요한지 끄덕거리게 된다. 나에게 산책은 일종의 환기이다. 신선한 공기를 쐬며 멍해진 정신을 일깨우고 분위기를 전환하는 환기. 짧게는 산책, 외출부터 지인과의 약속, 잠시 집을 떠나는 여행 등, 이런 일련의 행동을 몸이 요구한다. 정신과 영혼을 위한 환기이다. 매일 규칙적으로 스스로를 긴장시켰다면, 숨통을 트여 이완하는 시간이다. 작업에 질리지 않기 위해서 환기하는 사이클도 꽤나 규칙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매일의 환기에는 산책과 운동이 도움이 된다. 한 시간 가량 걷거나 달리고 돌아오면, 소화도 잘되고 다음날 몸이 가볍다. 왠지 그럴 기분이 아닌데도 일단 뛰기 시작하면, 달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달리고 싶어진다. 처음에는 묵직한 저녁식사를 소화시키는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좀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 앉아서 작업하는 특성상 몸이 경직되기 쉽고, 앉아서 하는 작업이지만 체력이 요구된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작업에 집중할 수 없다.
# 셀프 주5일제 # 오라~금요일
하지만 매일의 환기로도 소용없는 시기가 금요일에 찾아온다. 다섯날만 일하고 이틀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도록 달력에도 구분되어 있지 않던가. 처음에는 호기롭게 주말에도 작업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몸이 피로를 호소해 왔다. ‘어이 형씨, 이거 너무하는거 아니오’ 잘 쉬지 않으면 몸이 스스로 파업을 하며 몸살이나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내 몸은 이미 학교와 직장에서 주 5일제의 사이클에 길들여 있다. 불타는 금요일은 아닐 지어도 한 숨 돌리는 주말은 무척 중요하다.
외부 일정이나 업무미팅은 대체로 주말 전후로 잡는다. 대부분 서울에서의 일정인데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나서 평소에는 부모님이 계신 화성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외부와 연결되는 많은 일들은 여전히 서울에서 일어난다. 외주를 의뢰받거나 디자인 수업을 하는 등 돈을 버는 구체적인 일들이다. 나의 이미지와 언어를 외부와 교류할 수 있는 점은 작업을 지속하는 큰 원동력이 된다.
화성과 서울은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이다. 경기도 광역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며 서울에 접속한다. 달리는 창 밖 풍경을 보면 평일의 나의 세계를 떠나는 실감이 든다. 돌아올 때는 반대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감을 실감한다. 짧은 여행처럼 창밖으로 생각이나 작업의 고민들이 자유롭게 둥둥 떠다니는데 그러면서 정리되는 것들도 꽤 있다.
이따금 지인들과 만나면 토크가 길어진다. 과거의 어떤 시기에 일상을 밀도 있게 보냈던 사람들이 꾸준한 인연이 된다. 일 년에 한 두번 만나는 만큼, 만나면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제는 SNS만 봐도 ‘저 사람은 저렇군’하며 근황 정도야 짐작하지만, 근황의 총체는 그렇게 단면적이지 않다. 문득 서로가 궁금해질 때가 되어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그 사람의 오늘, 그리고 나의 오늘과 나누는 많은 대화들, 저녁과 술 그리고 차를 다 비울 때 까지 이야기는 계속 된다. 함께 몸 담았던 영역에 관한 소식들, 사회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또 무엇.무엇.무엇. 긴 이야기 속에서 상대가 겪은 사건들도 뒤늦게 알아차린다. 꼭 그때 그 소식을 몰랐더라도 혹은 알았다고 해도 어찌해줄 수 없는, 감당해야 하는 삶의 몫어치는 그대로이다.
어설프게 타인의 비극에서 나의 삶을 반추하거나, 서투른 위로를 건네지 않고 묵묵히 듣고 또 헤어진다. 계속 일을 했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대의 모습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도 어렴풋이 떠올려본다. 내가 그림을 그린 이후부터 달라진 삶. 여전히 전해 듣는 그때의 삶. 그곳에 남아있어도 혹은 이곳으로 왔어도 세상 흐름에 기민하게 올라타지 못하는 건 비슷하다. 모쪼록 내 작업을 응원하고 있다는 말과 여운을 품고 돌아온다. 서로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그래야 다시 만날 수 있다.
# holy한 쉼터, 미술관
주말에 주로 염두 해 두던 전시나 영화를 보러간다. 가장 좋아하는 곳은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예술인은 입장권이 무료여서 스스로 ‘아, 나 예술인이군’ 하며 자의식을 잠시 느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규모 있는 기획전시가 열리는 편이며, 덕수궁관은 작가 한명의 작업을 조망하는 개인전이 열린다. 둘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미술관은 천장이 높고 하얗다. 여백이 많은 미술관에 들어서면 마치 성당이나 교회에 온 듯한 안정감을 느낀다.
알랭드보통은 미술관이 영성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빽빽하게 꽉 찬 도시로부터 도망쳐 들어 온 미술관의 화이트큐브는 정신의 피난처이다. 하얀 벽 앞에 걸린 유화의 붓질을 생생하게 보고, 크게 인쇄 된 사진이나 영상, 설치물을 맞닥뜨린다. 텅 빈 곳에서 큰 존재와 단둘이 마주하는 시간은 충분히 영성적이다. 작품 속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은 작가의 치열함을 느끼고 나오면, 내가 하는 작업이나 고민은 참 얄팍하다고 회개하게 된다. 여러모로 종교 없는 내가 하는 영성활동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조금 걸어가면 <보안여관>이 있다. 투박한 옛 여관을 미술공간으로 활용하는 곳이다. 큰 미술관과 대조적으로 투박한 구조와 무너질 듯한 벽에서 풍기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거친 벽에 걸린 젊고 생생한 동시대의 작업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를 보면 2층에 <보안책방>으로 발길이 이어진다. <보안책방>에는 늘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 문학, 미술, 디자인을 중심으로 책이 엄선되어 있다.
마치 전시장 처럼 구성되어 있는 곳에서 표지가 아름다운 문학서적과 미학이 담긴 책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책을 사서 창가에 앉는다. 경복궁의 돌담을 마주보고 앉을 수 있도록 구성된 바테이블과 큰 창 덕분에 책을 읽으며 호적한 시간을 보내기 좋다. 하지만 어떤 날은 사진 찍는 방문객이 많아져서, 셔터 소리를 피해 도망 나와야 할 때도 있다.
지인과의 길고 밀도 높은 대화, 성당같이 큰 미술관과 전시의 여운, 그리고 새로 읽게 될 책을 자양분처럼 흡수한다. 맛있는 맥주를 마시는 시간, 애인과 데이트 하는 시간, 한강만 멍하니 보던 시간들이 주말사이 흘러가면 ‘이제 슬슬 돌아갈까’ 싶어진다. 다시 나의 책상, 나의 일상으로 ,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려 생각이 움직인다.
요가에서는 모든 동작의 마지막에 누워서 숨만 쉬는 시간이 꼭 있다. 아무런 동작도 없는 이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온전한 이완이 이루어져야 긴장과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일과를 준수하는 만큼 몸의 나사를 좀 풀어놓는 시간도 소중하다. 잠시 작업공간과 멀어지는 환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산책은 말입니다. 활기를 찾고, 살아있는 세상과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하는 일입니다. 산책이 없다면 나는 한마디도 쓸 수 없고 스케치 할 수도 없습니다. 산책을 못하면 나는 죽은 것이고, 무척 사랑하는 내 직업도 사라집니다.”
- 로베르트 발저<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