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인의 1집 앨범 <음악가 자신의 노래>의 첫 번째 트랙은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이다. 앨범 제목부터 곡 제목까지 음악가 스스로를 소재로 노래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음악가 대신 예술가를 대입해 봐도 공감 가는 지점이 많은, 예술인을 위한 노래들이다. 이 곡의 가사에 따르면 예술가는 ‘매년 일정한 비율로 태어나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되어버리는 직업이며, 누구나 좋아하지만 누구나 집안에 들여놓고 싶어 하진 않는다’이다.
자기소개하는 자리에서 예술가라고 본인을 소개해보자. 대체로 ‘멋있다’, ‘자유로운 영혼’ 등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불현듯 나의 가족이 그런 커밍아웃을 한다거나, 그런 인물을 결혼하겠다고 집에 데려 온다면 아까와 다른 싸늘함을 맛볼 것이다. 정말 누구나 선망하지만, 내 가족은 아니었으면 하는 직업이다. 모쪼록 성공한 이후에 커밍아웃하는 것이 현명하다.
오늘날 사랑받는 가장 대표되는 예술가는 반 고흐다. 정확히는 ‘오늘날에서야’ 사랑받는 화가이다. 우리는 고흐의 생애를 이야기로 소비하고, 그의 정신병과 광기마저 드라마의 요소로 바라본다. 그런 비극마저 끌어 앉아야 예술가의 삶이라고 여긴다. 과거의 화가에게 보내는 애틋한 시선과 달리, 동시대의 예술인에게는 ‘밥은 어떻게 벌어먹나’는 걱정을 앞세운다. 고흐가 처했던 삶의 비극은, 그 시대의 사람들도 똑같은 시선으로 그를 대했기 때문이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부친 마지막 편지 내용은 ‘생계를 위해 돈을 부쳐달라’였다. 경제적 곤란함이 동반한 우울과 광기로 그는 귀를 잘랐다. 경제적 궁핍함은 삶을 마감하기까지 늘 함께였다. 지금은 그 사연이 담긴 자화상과 정신병원 정원 그림이 갤러리에 모셔져 있다. 오늘의 대중은 화가의 비극에서 피어난 예술혼에 공감하며 그림을 관람한다. 하지만 한 인간이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시대는 냉정했다.
도시의 우울을 표현한 애드워드 호퍼의 생애도 궁핍함을 모면하기 위한 분투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불황이었던 대공황 속에서 미술을 해야 했던 호퍼의 정서는 우울했다. 배급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먹고사는 문제와 한참 더 멀리 있는 자신의 그림 때문에 우울했다. 신문사 문을 두드리고 일러스트 일이라도 구하려던 시절을 굴욕적으로 생각했다. 그를 둘러싼 도시와 불황의 기운은 우울감으로 그의 성격과 작품으로 형성되었다. 지금 그 그림들은 도시의 쓸쓸한 세련미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호퍼는 말년에 시대로부터 인정받은 편이니 고흐보다는 훨씬 행복했던 화가였다.
너의 쓸모는 무엇이냐
일하지 않은자 먹지도 말라
윤리의 얼굴로 묻는 인간의 쓸모
두 화가는 왜 그런 삶에 처해야 했을까. 고흐가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그를 인정했을까. ‘귀를 자른 조현증 환자, 알고 보니 극단적인 예술가’ 정도의 뉴스거리로 소비될 것이다. 고흐의 삶에서 읽어야 하는 건 경제성을 증명 못하는 예술가의 혼란이다.
근대를 거치며 계급이 사라지고, 자본주의 안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한 처지에서 자신의 ‘쓸모’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로 변하였다. 각자의 쓸모는 직업이 되었고, 예술가나 작가의 일은 여러모로 쓸모에서 비켜서 있었다. 작가 스스로 ‘얼마’라고 써 붙여야 하는 비즈니스에 능숙해지지 않으면 생존은 위협받게 되었다. 고흐가 겪은 궁핍함은 근대화로 변해가는 시대에 겪게 된 예술가의 혼란이다.
한나 아렌트는 작업을 ‘인간의 조건’중 하나로 여겼다. 아렌트는 사람들이 맹신하는 과학과 자본주의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인간성에 주목했다. 인간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노동’,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표현하는 ‘작업’,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대화하는 ‘활동’. 이 세 가지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이라 정의했다.
생계를 유지하는데 온 시간과 힘을 쓰는 노동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인간의 삶. 창작하고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던 인간의 또 다른 마음이다. 나는 이 마음을 일종의 저항심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먹고사는 것만이 삶을 옭아메어 올 때 고개를 드는 저항이다. 하지만 현실은 늘 집요하다. 가족, 이웃, 친구, 학교, 스승 등 그들이 꺼내는 말과 검증은 예술가를 둘러싸며 추궁한다. 거기에 대중매체, 소셜 네트워크(SNS)가 더해졌으니 한 개인이 견뎌야 하는 동시대의 검증은 더 촘촘해졌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 일말의 호기심은 마음 깊은 곳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삶의 기준은 이것이라며 요구하지만, 기존의 방식이 어쩐지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감지하기 시작하는 순간 마음에 저항이 생긴다. 생존의 위협이나 경쟁의 불안으로 삶을 척박함하게 만다는 힘에서 벗어나는 마음이다. 자신의 삶을 더 확인해 보고 싶은 누군가의 충동은 새로운 예술가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문학과 예술의 힘은 견고하게 자리 잡은 ‘합리성’, ‘도덕성’, ‘기성의 기준’에 질문을 던지는데 있다. 인간을 인간답고 자유롭게 하는 삶의 방식은 무엇인지, 그 호기심을 더 적극적으로 탐구해가는 사람이 예술가와 작가이지 않을까. 김목인의 노랫말 마지막을 다시 빌어오면,
‘예술가, 예술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현대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야생 지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