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 <아직, 해가 저무는 시간> 원고 #3
“저놈의 것들 싹 다 없어져야지 에휴.”
“맞아, 데모꾼들이 더 많다던데?!” “다 데모꾼들이야.”
“해도 너무하지 저게 뭐야. 저게. 언제까지 저럴 거냐고.”
마을버스 차창 밖으로 광화문이 나타나면서 할머니 무리의 언성이 높아진다. 성경책을 끼고 앉아 계신 것을 보니, 일요일 예배에 다녀오시는 길인가 보다. 무리 지은 대화는 마치 버스의 여론인양 더 격해진다. 내 가슴에는 세월호 배지가 달려 있었다. 불편한 마음이 치고 올라와 그만하시라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나의 마음은 할머니들의 기세를 넘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말은 입 근처에 걸려서 몸에 열만 오른채로 두 정거장이 지났다. 시청에 닿아서 나도 저 무리도 내려서 흩어졌다. 말대꾸하지 못한 나의 말들만이 남겨졌다. ‘그렇게 말하시는 거 아니에요.’로 시작되어 ‘당신 아들이나 손주가 죽어도 그렇게 얘기하실 거냐.’로 이어질 말들. 기세를 넘지 못한 문장은 무용하게 나의 속으로만 삭혀졌다.
‘잊지 말아요’라는 말과 ‘그만하라’는 망각에 편승한 말이 공존하는 사회에 살게 된지 이년이 넘어간다. 그런 땅위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참 허망할 때가 있다. ‘잊지 말아요’라는 말에 기대고 싶을 때면 광화문을 찾는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자극의 도시에서는 한 가지 사건을 기억하고 살기가 어렵다. 지하철 역에만 들어가도 광고판은 모든 공간을 점유하듯, 기둥과 벽면 개찰구, 스크린도어에서 눈을 찌른다. 온갖 광고는 이 시대 슬픔과 사건에 무관하다. 서울애서 한 곳이라도 추모를 향한 둥지가 움튼 것은 다행이다. 차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다닐때 노란색 리본 조형물과 현수막들 그리고 피켓을 들고 횡단보도에서 1인시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나의 망각에 '잊지 말아요'하고 말을 건넨다. 인간의 기억보다, 장소가 간직하고 있는 물리적인 기억들이 더 한결같다. 걸어서 지나칠때는 그래도 꽃은 한 송이 놓을 수 있는 추모의 공간이다. 그러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편치 않다. 노란색 리본 뱃지를 이제 옷에다 단다. 가방에 메달때 보다 옷을 입을 때 뱃지를 달며 다시 의식하게 된다. 편치 않은 마음을 한 가닥이라도 계속해서 잡고 있는 것이 내가 하는 사람의 도리이다.
2014년 4월 16일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뉴스로 접했던 배의 사고 소식이었다. 큰 여객선 한척이 사고가 나서 물에 반쯤 걸쳐져있었고, 뉴스에서 구조하느라 바쁜 현장모습이 중계되기 시작하였다. 어쩌다 저랬나 싶은 마음과 구조하겠지하는 무심한 마음으로 뉴스를 본체반체 하였다. 저녁시간 그 다음날 또 다음날 뉴스는 점점 현장에서 '왜 구조가 되지않는지' 복잡성과 의혹을 파헤쳐야 하는 쪽에 무게를 싣었다. 팽목항에서 전국으로 생중계되던 영상과 시간이 지나갔다. 배가 가라앉도록 아무것도 못한 무능이 드러날까, 배에 탄 이들을 탓하도록 잔인해지기로 작정한 건 언제부터인가? 여론이 무서웠던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돌아온 사월이 들어서기 무섭게 배상금 카드를 빼어 들었다. 뉴스를 뿌렸다. 유가족은 광화문에서 머리카락과 눈물을 툭툭 떨구었다. 때론 사람들이 이 만큼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싶다. 한쪽에서 작정하고 잔인해지니, 유가족이 사회에서 약자가 되었고, 광화문은 섬이 되어버렸다. 가장 위로받아야 하실 분들이 빠른 편 가르기 속에 약자로 내몰렸다. 참 잔인했다.
세월호에 대한 어떠한 고통도 사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드러낼때 정치적이라 비난받았다. 광화문은 그렇지 않다고 묵묵히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되었다. 분개하였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력함을 떨쳐내지 못한 채 지내는 일상이 이어졌다. 분노도 무기력도 아닌 '그' 감정이 쌓여갈때, 참여연대에서 그림을 지도해주는 고경일 선생님께서 걸게그림을 제안하셨다. 선생님은 그림이 한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가까이서 보여주셨다. 요즘 같이 언제나 대형현수막을 척척 찍어내는 시대에, 여러명이 쭈그리고 앉아 걸개천에 붓으로 그리는 모습은 주목받을 일이었다. 추모하러 온 발길들에게도 작지만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여백이었고, 다 완성된 그림이 푸른 하늘아래 나부낄때 그나마 갖는 위안이 있었다. 뭐라도 해야했던 사람들에게는 작은 해방구였을지도 모르겠다. 광화문 건너편에서는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확성기와 플랜카드로 끊임없이 '외부세력 물러가라'며 조약하고 집요한 구호를 외쳤다. 참 잔인했다.
뭐라도 해서 해소 하고 싶은 슬픔의 감정, 앞으로의 일상에서 계속해서 망각해 나갈 것을 알기에 드는 마음들. 빚진마음이지 않을까. 새월호와 관련한 표현 중에 가장 공감되는 말이었다. 세상 슬픈지 모르는 우리의 희극 속으로 바람이 흐르기를 바란다. 봄이면 꽃구경을, 여름에는 물놀이를, 가을에는 단풍구경을, 겨울에는 눈 구경. 그리고 또 돌아온 봄을 설레어하는 희극의 순환 속, 당신이 기쁨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을 때. 세월의 먼지가 쌓여 꺼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슬픔의 서늘함이 찾아들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당신의 무능함과 나의 무능함, 우리의 무능함이 너무나 민망하고 멋쩍은 것임을, 바람이 부는 동안이라도 어쩔 줄 모르게 서성거렸으면 한다. 티브이에서 보여주는 삶이 온통 예능과 철 모를 사랑타령, 나르시시즘에 취한 힙합 가사와 맛집과 카페를 탐닉하는 것으로 당신의 희극을 정당화할지라 말이다. 마음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날카롭게 애리며 지나가는 느낌과 감성을 놓치지 말고 살아갔으면 한다. 벚꽃 아래로 잊히고 배상금으로 도려내기에 아직은 이른. 마주해야 할 당신과 나의 무능이며 깊은 슬픔이다. 빚진마음이다.
작품집출간 후원 모금을 진행중입니다
저의 첫번째 작품집 사전구매자이자 출간을 지지해 줄 후원자 분들을 모집합니다.
제작은 현재 교열작업 중에 있으며, 1월초에는 인쇄소를 다니며 인쇄공정을 진행하려 합니다.
예상 출간일자 및 배송일자는 2017년 1월 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책 배송이 완료 된 이후에는, 관계가 이어지는 동네서점에서도 만나 보실 수 있도록 유통할 예정입니다.
추후 2017년 상반기에 전시회 및 출간기념회 등으로,
모금에 참여해 주신 분들과 함께 ‘책과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정중히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작품집 설명은 https://brunch.co.kr/@noranseed/61 이곳에서 확인해주세요.
*우리은행 1002-248-892186 박우영
*모금기간 2016.12.19(월) - 2017.1.4(수) 자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