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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 Dec 16. 2016

느리게 피는 꽃

작품집 <아직, 해가 저무는 시간> 원고 #2

쿤싸이턴싸이 입구



느리게 피는 꽃



Open When I am ready Close When i feel enough

문 여는 시간 : 준비되었을 때

문 닫는 시간 :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껴질 때



문 열고 닫는 시간이 솔직한 이곳, 빠이에서 묶고 있는 숙소 쿤나이턴싸이다. 스쿠터들이 바쁘게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다니는 길가이면서 타운에서 가까운 위치이니, 장사하기에 꽤 목이 좋은 곳이다. 수공예품 샵, 카페 그리고 방갈로 게스트하우스까지 운영하고, 아기자기 한 맛에 지나가던 여행객들이 한 번쯤 발길을 멈춘다. 나도 그런 여행객 중의 한 명 이었다. 주인장은 Aye(아이)라는 태국 아가씨는 손님에게 과하게 반응하지 않은 채 자기 일을 한다. 첫 방문에도 방을 덤덤히 보여주며 일주일 묶으면 좀 싸게 해준다는 제안만을 건네었을 뿐이다. 태도에서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태국 전통식 방갈로와 각종 도자기, 구석구석 주인의 손길이 닿은 작은 정원, 그리고 가운데에 자리 잡은 포근한 해먹과 쿠션들이 앉고 싶고 머무르고 싶게 만들었다. 빠이에 기대하는 '히피 이미지'만 돈으로 칠해놓은 곳과 다르게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주인네의 취향과 솜씨가 곳곳에 묻어있다. 쿤싸이턴싸이(Slow Flower 느리게 피는 꽃)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루 만에 질려서 돌아갈 뻔 했던 빠이에서 쿤싸이턴싸이를 발견하고 일주일을 머무르기로 하였다. 이곳의 가장 큰 여행업체 ‘AYA Servise’ 회사 로고가 찍힌 헬멧과 스쿠터를 반납하고, 자전거를 일주일 치 렌트했다. 느리지만 자전거로 다닐 수 있는 곳만 구석구석 다니고 싶었다. 아침에 나갈 채비를 마치고 8시쯤 되었을 때 주인장 아이도 아침을 먹는다. 아침까지 제공되면 참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럴라치면 본인이 부지런해야 하기에 하지 않는 듯하다. 혹시 잘 다니는지 궁금한지 지도를 보여주며 괜찮은 곳을 추천해주었다. 처음 집어준 곳을 가봤다고 했더니 ‘제법인데’ 라는 반응이다. 그곳을 지나 빠이 강을 건너면 건너편 마을 길이 ‘파라다이스’라는 귀띔을 해준다. 오늘 도전 해볼게.


밤에 벌벌 떨게 만드는 새벽의 한기는, 11시면 다시 뜨거운 햇볕의 뜨거움으로 바뀐다. 아쉽게도 강을 건너는 다리와 건너편 길은 찾지 못 한 채,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시킨다. 태국식 중에 가장 깔끔하고 개운한 커리와 현미밥을 내놓는다. 점심을 오무작 거리며 오며 가는 손님들을 본다. 주인장 Aye가 어머니랑 같이 운영한다. 영어를 하며 사람을 맞이하는 것도, 주방에서 요리하는 것도 아이이고, 어머니는 주로 사람과 만나지 않아도 괜찮을 정원 관리와 방 관리를 하신다.  Aye가 주방에 들어가 있으면 발길을 멈추었다가도, 반기는 이가 없어서 그냥 기웃거리다 돌아가는 손님이 제법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와 속도 내에서 일하려 하는 스타일인 듯하다. 가장 입구인 수공예샵에 한 명이 더 상주 하면 팍팍 돌아갈 거로 보이지만, 나로서도 사람이 적을수록 좋으니, 속으로만 생각해본다. 주말 오후 드디어 Aye가 이야기해준 대나무 다리도 찾고 그림도 충분치 그린 날, 자랑해야지 하는 들뜬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오니 여전히 Close라고 적혀있다. 주방 카운터에 앉아 있는 아이와 인사하며 물었다.


“주말과 일요일에는 일하지 않니?”

“아니, 내가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쉬는 거야. 일하고 싶을 때는 일요일도 문 열고 그래.”

아, 그제야 Open과 Close에 적어놓은 말들이 그냥 문구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천천히 자기가 일할 수 있는 속도로 산다는 것. 속도를 지키기 위한 자기 완결성과 주변의 속도에 흔들리지 않는 강단도 있어야 한다. 사장이나 대표가 되면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많아져서 그러기 쉽지 않다. 여행지에 와서도 숙소에서 가만히 쉬면 엄습해오는 조바심만 봐도 그렇다. 휴일에 하루 종일 집에 홀로 있다가 해가 뉘엿뉘엿할 때쯤에야, 영화라도 한 편 봐야 될 것 같은 소진 증은 이미 만성이다. 타인에 의해 강요되는 삶이 싫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자진해서 소진했다는 말에 왠지 뜨끔한 것도 사실이다. 천천히 자신의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고 나태해지지 않도록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 환경과 자신을 믿고 일상을 꾸려나가는 건강한 속도. 이곳에서 배운다.



작품집 92-93 페이지


작품집 96-97 페이지




작품집출간 후원 모금을 진행중입니다


저의 첫번째 작품집 사전구매자이자 출간을 지지해 줄 후원자 분들을 모집합니다.

제작은 현재 교열작업 중에 있으며, 1월초에는 인쇄소를 다니며 인쇄공정을 진행하려 합니다.

예상 출간일자 및 배송일자는 2017년 1월 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책 배송이 완료 된 이후에는, 관계가 이어지는 동네서점에서도 만나 보실 수 있도록 유통할 예정입니다.

추후 2017년 상반기에 전시회 및 출간기념회 등으로,

모금에 참여해 주신 분들과 함께 ‘책과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정중히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작품집 설명은 https://brunch.co.kr/@noranseed/61 이곳에서 확인해주세요.


*우리은행 1002-248-892186 박우영

*모금기간 2016.12.19(월) - 2017.1.4(수) 자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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