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전시를 마치고.
전시는 작가에게 긴장감을 준다. 전시 일정이 정해지면 시작일이 곧 마감일이 된다. 공간에 자신의 작업을 펼쳐놓는 연출을 생각하며 세밀한 고려들을 하게된다. 9월초순, 전시를 하였다. 현재 그림을 학습하는 '작가공동체 힐스(Hills)'의 짧은 전시였다. 힐스는 일러스트 작가를 교육하는 장소이다. 그림을 혼자 학습하는데에 한계를 느껴왔고, 획일적 미술교육을 벗어난 대안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상반기동안 학습 한 흔적들을 펼쳐놓고 향후 작업의 단서들을 탐색하는 목적이였다.
작가 개인별로 마주치는 이슈들이 있는데, 나는 현실의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이슈와 혼란을 만나고 있다.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한 지점은 '사람'이었다. 현실에는 사람이 존재한다. 사람을 제대로 표현하려고 하다보니 지난한 학습이 필요했다. 비스듬히 서 있는 모습, 시선, 핸드폰을 쥔 손, 옷의 주름, 피부색, 사람은 하나의 명사라고 생각했지만, 새로 알아가야 할 사실의 세계였다. 알면 알 수록 사람을 정확히 표현하려는 부담이 따라왔다. 사람을 사실적인 문법으로 담아오면, 사람과 조우하고 있는 사물과 풍경도 같은 문법으로 표현되어야 어색하지 않다. 사실이 지닌 엄중한 힘을 탄탄하게 표현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젖힌 작가들이 있다. 그 반대편에 유희적으로 사람을 표현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들도 있다. 나의 숙련되지 않은 표현은 '이 중간에 나의 스타일이 있지 않나?'하는 유혹에 쉽게 노출되었다. 형태와 빛에 대한 이해와 표현이 서툴렀고, 그림 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혼란의 흔적들을 이리저리 펼쳐놓으며 전시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최근에 읽은 로베르트 발저의 글을 벽면에 걸었다. 이 문구가 힘이 되어주었다. 문구 주변에는 연필 소묘, 누드 크로키, 드로잉의 흑백 작품을 펼쳐놓았다. 크로키와 드로잉은 늘 낱장으로 존재했지만, 텍스트와 함께 편집하여 디자인 해 보았다. 특히 크로키를 적극적으로 이미지화 하여 전시장에 배치해보았다. 연습용으로만 생각했던 결과물들도 충분히 이미지로 존재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찾아와 준 사람들은 현실의 힘에 감응해주었다.
소묘는 전시장에서 더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 사내가 소묘 작품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 서있었다. 내방에 걸려있는 뜨개모자와 스카프를 관찰한 그림이었다. 직물이 모여드는 구조를 연필로 집요하게 눌러가며 그린 작업이었다.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는 귀한 재능이 있네요.' 사내는 모자 그림을 진지하게 감상해주었고 나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모자 그림은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몰두한 시간이, 모자 너머를 보게 만드는 힘으로 남았다. 아름다움은 현실을 스트레이트로 담아오려는 시간이 정직하게 쌓였을때 담겨오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소재를 꾸미지 않고 촬영하는 사진장르를 스트레이트(Straight-Photography)라고 한다.)
흑백그림들의 반대쪽에는 그림을 시작한 2012년부터 지금까지의 작업들을 걸었다. 인물의 손끝에서 발끝까지 미세한 표정을 지어낸다. 구체적일수록 보는 이가 자신의 기억에서 장면을 길어와, 화면위에 겹쳐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람객의 서사는 화면 속 인물의 디테일과 감응하며, 그 만남에 삶의 보편성이 읽혔다. 보편성은
작가가 미처 의미를 두지 않았던 지점에서도 감응을 일으켰다.
두 형제와 아버지가 그려진 장면에서, 오른쪽 아이는 한 팔을 뻗어 벽에 지지하고 있다. 왼쪽 아이는 아버지에게 기대어 있다. 집안에서 맏이로 자란 독자는, 오른쪽 아이가 자신처럼 맏이의 운명을 살았음을 읽어낸다. 이 그림은 나와 형의 어릴적 가족사진이다. 막내인 나는 아버지를 주제로 그렸고, 형제간의 해석을 의도하거나 염두 하지 않았다. 보는이가 인물을 해석하고, 형제의 정체성과 삶 너머를 읽어낸다. 현실을 스트레이트로 (Straight) 담아 온 장면은, 작가의 세계관만으로 다 해석하고 의도하지 않은 지점까지 담는 힘이 있었다.
그림작가들이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스타일을 이야기한다.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은 스타일에 속기 쉽다. 범람하는 이미지와 유행, 주변의 반응은 특히 혼란의 원이이 되기 쉽다. 힐스에서는 동시대에 작가로 발 딛기까지 많은 혼란을 거슬러 갈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삼일간의 전시는 그 질문의 연장에서 펼쳐지는 구체적인 학습의 장이였다. SNS와 복제 된 출판물로 '작은그림'을 보는데 눈이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현실 너머를 바라보며 대화할 수 있는 그림은 무엇일지 계속 질문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현실의 힘이 너의 그림을 지켜 줄 것이다' 말씀하셨다. 현실을 응시하고 그 피사체답게 초점과 장면의 맥락을 잡아가는 노력. 거기서 아름다움과 이야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전시는 하나의 표현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작가 스스로 더듬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경험, 무의식, 혹은 오늘 지나친 장면까지 근거를 탐색하는 시간이,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도 단단한 닻을 내리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p.s *짧은전시에도 발검음 해주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