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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 Nov 03. 2017

오늘의 풍경

자전거를 타고 성수동 골목을 살핀다. 가벼운 스케치북과 연필을 챙기고 어슬렁 페달을 젓는다. 이번 달부터는 풍경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성수동에 살면서 주로 서울숲의 나무를 드로잉 했다면, 사람의 삶이 존재하는 골목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람 따로 나무 따로 그리다가, 좀 더 화면의 구성이나 배경을 생각하니 다양한 사물과 삶이 존재하는 풍경을 연습해야지 싶었다. 건축물이나 직선의 도로에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해오다가, 지금의 사람들이 일상을 사는 풍경도 더 들여다보고, 그릴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집을 나서니

그려야 할 장면이 너무나 많아졌다. 자전거를 타고 일분을 지나지 못하고 멈추고, 그리고, 또 멈추고 혹은 사진으로 찍고 선선해진 가을 날씨와 함께 사생하기엔 좋은 계절로 바뀌었다.


풍경을 이미지로 담아오는 연습은 할 수 있겠는데, 보고 지나칠수록 도시의 풍경을 보는 마음은 혼란스럽다. 서울숲에 닿아있는 우리 집은 성수 1가 2동. 이곳에 산지 햇수로 삼년, 세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삼년 사이에 골목 풍경은 빠르게 변했다. 지금도 변하고 있다. 80-90년대에 지어진 적갈색 벽돌로 쌓은 빌라 건물들이 재생된다. 정확히는 새로운 이미지를 위해 차용된다. 벽돌 외벽만 차용되고, 검은색 철제 프레임과 통유리가 새롭게 속을 채운다. 모던하고 미니멀하다. 골목에 살고 있는 일상과는 무관한 세련됨이 들어온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내려간 수원에서도 같은 풍경을 만났다. 수원 행궁 옆 골목에 카페와 식당이 같은 문법으로 들어서 있었다. 여름에 여행을 간 통영에도, 알쓸신잡 프로에서 여행지로 나오는 어느 골목에서도 같은 풍경을 본다. 골목에서 시간이 누적된 삶을 더듬어 보려 해도, 삶은 지워져 있고 적갈색 벽돌과 검정 프레임의 이미지만 남아있다.

 


나의 의식에 쌓여있던 '골목' 이미지와 2017년 골목풍경은 달라지고 있다. 누적되어 있는 '낭만'으로 해석하기에는 그 안에 삭제되고 밀려난 삶은 흔적조차 없다. 과정을 목격하지 못한 무수한 도시의 건축 아래에는 얼마만큼의 삶이 삭제되었는가. 이미지를 그려내는 사람으로서 이 풍경을 단순히 '재현'하기에는 내키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근대가 만들어낸 곧은 직선의 건축물과 도로, 각자의 방과 각자의 차를 가진 삶이 진보라고 믿어 온 가치관 속에서 태어나 살아왔다. 근대의 문법 안에서 출발한 우리 세대의 삶 속에서 나는 어떠한 해석을 통해 이 풍경을 그려내야 할지 생각한다.  


지방에 가면 더 복잡한 풍경을 만난다.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 주변지역 일수록 풍경이 어그러져 있다. 대도시에서 정돈 된 직선을 긋기 위해 한쪽으로 치워버린 혼잡스러움이 뒤엉켜 있다. 공장, 발전소, 납골당, 매립장등의 공급과 뒷처리를 담당하는 시설들은 그곳의 맥락과 관계없이 저질러져 있다. 그 사이사이 차를 위한 도로와 차로 이동하는 승객의 눈에 띄어야 먹고사는 생계형 붉은 간판이 각자의 이유로 또렷하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농촌과 풍경을 이루지 못했는데 풍경 인양 뒤엉켜 있다. 그 틈바구니에 서사와 문화와 습관을 가진 삶이 파편처럼 흩어져있다. 지역성의 이미지는 그렇게 어그러진채 밀도만 복잡해진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지방의 풍경은 찾기 어렵다. 혹은 도시의 여행자들이 머물기 좋게 복제된 똑같은 골목 관광지의 풍경 정도가 지금 있을까.


그럼에도 삶의 무대가 되는 이 풍경을 긍정해야 할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지, 희망의 근거는 어떤 단서로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한 골목 건너니 다른 풍경이다. 같은 성수1가 2동이지만 서울숲과 맥락이 떨어져 있어서 인지, 재개발을 열망하는 글자만 거칠게 적혀있다. 박스를 모으는 손길, 막 퀵서비스를 마치고 온 오토바이, 화투를 치는 할머니들의 소리, 밥 짓는 소리들도 골목을 지나며 나에게 남는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다시 차가 빨리 내달리는 6차선 왕십리로. 리어카 한 짐 싣고 횡단보도를 조급히 건너는 노인. 눈을 질끈 감고 나도 풍경을 건넌다. 






하늘과 땅이 마주하는 멀어짐을 볼 수 없다. 

멀어진다는 것은 아련하다는 것이며

저 너머, 다음에 올 시간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을 가르는 건물의 직선은,

사람에게 무엇을 보게하는가.

혹은 보지 못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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